매일신문

'디도스'에 국회도 여당도 마비…선관위 홈피 공격 파장

예산안 회기내 통과 난망, 쇄신 논의까지 뒷전으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의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파문이 가뜩이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던 국회를 올스톱시켰다. 예산 회기 내 통과는 물건너 갔고 총선을 4개월 앞두고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망연자실 대응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디도스 파문으로 국회는 올스톱

한'미 FTA 비준안 통과 이후 국회 일정 보이콧에 나선 민주당이 파상공세를 펴면서 내년도 예산안의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추후 의사일정 합의도 시기를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날 원내대표 회동에서 9일 본회의 개최를 거부했던 민주당은 6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진상조사위 연석회의를 열고 '디도스 파문'에 한나라당의 조직적 개입 가능성을 거듭 제기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민주당 내 '한나라당 부정선거 사이버테러 진상조사위원회'는 전날 경찰청을 방문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한나라당 황우여'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5일 원내대표 회동을 갖고 국회 정상화 문제를 논의했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한나라당 이명규, 민주당 노영민 원내 수석부대표가 배석한 이날 회동은 지난달 22일 한'미 FTA 비준안 처리 이후 첫 공식 접촉이다.

한나라당은 회기 마지막 날인 9일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포함한 민생법안을 처리하는데 민주당이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부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즉각적인 재협상 착수 등을 요구하며 본회의 개최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성의있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기국회 내에 등원하는 것은 요원하다고 압박했다.

◆난파선으로 전락한 한나라당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소속 국회의원의 비서에 의해 저질러진 디도스 공격 파문이 2003년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버금가거나 더한 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할 때'라는 공포감마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6일 오전 열린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소속 의원들은 위기감을 토로했다. 지도부는 말을 아꼈지만 망연자실한 표정들이었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정당대표 라디오 연설에서 "비록 국회의원 운전 비서가 연루된 사건이지만 경찰이 더욱 엄중히 조사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연루자를 엄벌해 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날 오후에 열린 의원총회를 전후해서도 격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예전 북한 정찰국 이상의 행동"이라며 "당 해체 수준까지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와 뭐가 다르냐. 투표함 조작과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또 정두언 의원은 "이제는 당이 수명을 다한 것 같다"고 했고, 구상찬 의원은 "정신이 황망한 한나라당에 '피니시 블로'(끝내기 결정타)를 날렸다"고 비판했다. 전재희 의원은 "이번 사태를 보고 한나라당이 과연 존립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했고, 권영세 의원도 "당 차원에서 했다면 당이 해산당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공감했다.

논란은 다시 홍준표 대표 등 지도부 책임론으로 옮겨가고 있다. 원 최고위원은 "(지도부에) 진상조사위를 구성하자고 했는데 경찰 조사에 외압으로 비칠 수 있으니 기다리자고 한다"며 "당이 좀비냐"라고 꼬집었다. 정두언 의원 역시 "지도부는 위기에 빠졌을 때 능력을 발휘해 당이 빠져나오도록 해야 하는 건데 지금 그렇게 하는 게 하나도 없다"며 "탈당'재창당을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쇄신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김기현 대변인은 5일 "경찰 수사 등과 관계없이 빠른 시일 내 쇄신 논의를 위한 최고위 회의를 열 것"이라고 밝혔지만 당내에는 쇄신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는 인식이 많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판에 감기 치료법을 이야기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듯 했던 '신당 창당론', '재창당론'이 확산될 것 같은 분위기다. 적어도 박근혜 전 대표의 '조기 등판론'은 재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뾰족한 묘안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한나라당과 무관하다는 결과가 나와도 반(反)한나라당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설득력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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