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으로 자기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맞지 않으면 싫어한다는 의미의 한자성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감탄고토', 이 네 글자로 요약정리할 수 있다. 사리(事理)에 옳고 그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기분에 맞고 이익에 도움이 되냐를 따질 뿐이다. '감탄고토'란 프리즘으로 세태를 들여다보자.
◆입맛 쓴 것은 차단하겠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하 SNS)와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심의하는 전담팀 신설을 강행키로 해 '여론 검열' 논란이 일고 있다. 심의 기준이 모호한데다 사적 공간에 올린 글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의사표현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
방통심의위가 이달 1일 사무처 직제규칙 개정안을 의결해 '뉴미디어정보 심의팀'을 신설하기로 했다. 신설될 뉴미디어정보 심의팀은 통신심의국 아래 10명 규모이며, 법적 소송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사연구실과 법무팀도 신설했다.
뉴미디어정보 심의팀이 신설되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헌정질서 위반 ▷범죄'기타 법령 위반 ▷선량한 풍속'기타 사회질서 위반 ▷국제 평화질서 위반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글이나 사진이 올라오면 먼저 게시자에게 자진 삭제를 권고한 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계정 자체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심의위에 따르면 SNS 게시글에 대한 시정요구 건수는 2008년 36건에서 2009년 54건, 지난해 345건, 올 9월 말 현재 262건 등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미디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방송심의와 통신심의 관련 부서를 개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전형적인 '감탄고토'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판단 기준이 모호한데다, 수백만 건에 달하는 콘텐츠를 어떻게 모두 심의하느냐는 실효성의 문제가 논란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방통위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입맛 쓴 것만 규제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SNS 이용자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의견을 사전에 검열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아냥이 터져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나는 꼼수다' 등 정권 비판적인 특정 팟캐스트를 규제하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높다.
100만 명이 훌쩍 넘는 팔로어를 거느린 '트통령' 소설가 이외수(@oisoo) 씨는 "무한 알티(RT'리트윗), 언론의 자유는 개뿔, 혀를 자르고 눈알을 빼고 코를 베고 마침내 목을 잘라 버릴 기세"라는 트윗을 통해 SNS 규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직장인 조영현(36) 씨도 "우리가 술자리에 앉아 대통령을 욕한다고 심의를 받고 입을 닫도록 종용받지는 않는다"며 "SNS는 마치 술자리 대화와 같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인데 이 글들을 심의해 계정을 차단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연예인 방송출연도 입맛 따라
지난 9월 말 가수 윤도현 씨는 MBC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 DJ를 하차하게 되면서 "흔히 말하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상황이 바로 지금"이라고 불쾌한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제작진이 윤 씨와 상의 없이 새 진행자를 기용하겠다며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한 것. 소속사는 "윤도현이 (7년 만에) 다시 '두시의 데이트'를 맡은 것은 '배철수의 음악캠프' 같은 좋은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제작진의 열의에 공감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시간대도 정해지지 않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하라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밝혔다.
10월 26일에는 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가 매주 월'화요일 밤 교육방송(EBS)에서 진행해오던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 프로그램의 중단 통보에 항의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BS는 "강의 중 욕설과 비속어 사용, 종교적 문제 등으로 민원이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김 교수는 외압설을 제기했던 것. 지난달 김 교수는 '중용, 인간의 맛'을 출간하며 서문에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대북정책을 '중용을 잃은 사례'로 소개하며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 교수는 또 최근 강의 때 시청자들에게 시사풍자 팟캐스트(스마트폰 사용자 대상 인터넷 방송) '나꼼수'를 들으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사태는 닷새 만인 31일 EBS가 '중용' 특강을 당초 계획대로 방송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방송인 김미화 씨 역시 외압설 논란 속에 지난 4월, 8년 동안 진행해왔던 MBC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에서 하차했다. 프로그램 하차설이 대두되면서 MBC 노조 측이 "청취율이나 청취자 반응, 선호도 등에서 동시간대 타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갑작스럽게 교체설이 불거졌다"며 외압설을 주장하는 등 한바탕 시끄러운 뒤였다. 당시 김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부터 MBC 시사진행을 접으려 한다"며 "이젠 제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라 판단했다"고 프로그램 자진하차 사실을 알렸다. 김미화 씨는 지난해 블랙리스트 발언으로 KBS와 법적 소송을 벌이기도 했었다.
방송인 김제동 씨도 2009년 하반기 그가 진행하던 KBS '스타골든벨' 등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하차하면서 '외압'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이후 김 씨는 직접 사람들을 마주대하면서 토크쇼를 열었는데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하면서 오히려 '탄압 마케팅'이 성공했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가 됐다.
◆이념 잣대따라 '개념'논란
요즘 같은 세상에는 연예인 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행동 하나하나가 비판의 대상이고 논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인순이 씨는 작가 공지영 씨로부터 "개념없다"는 비난을 들어야했다.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개국 축하쇼가 진행된 이달 1일 트위터에 'TV채널 돌리다 보니 종편 개국 축하쇼에 인순이가 나와 노래를 부른다'는 글이 올라오자 공 씨가 "인순이님 걍(그냥) 개념 없는 거죠 모(뭐)"라고 되받은 것. 공 씨는 또 김연아가 종편 채널 'TV조선'의 9시 뉴스를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 영상을 본 뒤에는 "아줌마가 너 참 예뻐했다. 성년이니 네 의견을 표현하는 게 맞다. 연아 그렇지만 안녕"이라는 글을 추가로 트위터에 올렸다.
이를 두고 SNS상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이어졌다. 시작부터 특혜 시비에 광고료 논란이 뜨거운 종편채널 자체를 반대하는 이들은 공 씨의 의견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단 하나의 행동을 두고 개념없다는 발언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공 씨를 비판하기도 했다. 문화비평가 진중권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소신을 가지고 종편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개념'에 찬 행동일 수 있으나, 그런 소신이 없거나, 또는 그와는 다른 소신을 갖고 있다 해서 '개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죠. '개념'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에요. 아마"라는 글을 올려 공지영 씨를 비판했다.
또 지난 10'26 보궐선거 때는 영화배우 박중훈과 가수 이효리 김창렬, 배우 이동욱 씨 등이 투표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려 '개념 연예인'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런 개념 논란에 대해 직장인 조두현(39) 씨는 "사람을 평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텐데 단 하나의 행동만을 보고 앞뒤 맥락이나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비난을 퍼붓거나 찬양일색인 사례가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잠시 참고 기다리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장경애(33'여) 씨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현상이 이념 잣대에 따라, 시류에 따라 너무 급속하게 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사회가 혼란스럽고 억압이 강해지면서 양 극단의 목소리만 높아지는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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