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사람이 왔다. 케냐 사람이 아니고, 30대 중반쯤 되는 우아한 한국 여성 두 명이었다. 그곳은 에이즈가 많은 나라다. 근본치료보다는 완화의료가 필요한 곳이기 때문에 호스피스가 어디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다. 간호사와 사회복지사였던 그녀들은 모대학교 강연차, 대구에 온 김에 우리 병동도 견학하고 싶어했다. 호스피스병동의 쾌적한 시설과 환자들의 통증이 없음에 놀라는 것 같았다. 견학이 끝난 뒤 문득 더운 케냐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배내옷을 입히는지 물었다. 그들은 겸연쩍게 "그저 옆에 있는 천으로 둘둘 말아요"라고 했다. 갑자기 케냐에서는 죽음도 둘둘 말 것 같은 상상이 들어 서글펐다.
민수 할아버지는 80세 된 담관암 환자였다. 원래 당뇨 환자였는데 최근 혈당이 30 이하로 떨어져 의식을 잃고 입원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꾸 저혈당에 빠지니까 포도당을 주사하면서 며칠 지켜봐야 했다. 민수 할아버지 곁에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할머니가 있었다. 많이 마른 그녀는 얼굴에 주름이 다소 있었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생각과 고귀한 인품을 가졌다.
거동이 불편한 민수 할아버지 수발은 약한 할머니에게 꽤나 버거웠을 텐데도 참 잘하셨다. 입원하는 날 둘째아들이 "우리 어머님은 아마 아버님이 저혈당에 안 빠졌으면 끝까지 혼자서 수발을 다 하셨을 겁니다"라고 애틋하게 말했다. 저혈당이 떠나는 신호였는지 입원하고 열흘쯤 있으니까, 임종 단계에 이르렀다. 단정하게 올림머리를 한 그녀는 돋보기를 쓰고 회진 시간에 내가 왔는지도 모른 채, 죽어가는 남편 옆에서 그를 위해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다가오니까 준비한 민수 할아버지의 평소 입던 연보라색 한복을 입혔다. 물론 양말까지 단정하게 신겨 드렸다. 임종실에서 사망선언을 하러 갔을 때,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환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사망하셨습니다"가 아니라 "이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라고 했다. 성직자도 아니면서, 그리고 민수 할아버지와 종교도 다르면서.
나는 10년 전쯤 다도(茶道) 사범을 수료했다. 어리석게도 수료 기간 내내, 녹차 티백을 우려서 마시는 녹차 카테킨의 양이나 한복을 차려입고 수십 가지의 절차를 따라서 찻잔에 우려 마시는 카테킨의 양이나 어차피 똑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신라시대 복장을 하고 화랑이 마셨던 것처럼 소금을 탄 녹차를 풀풀 끊이는 마지막 수업 때였다. 다도 선생님은 "다도는 소꿉장난을 문화로 승화시킨 겁니다"라고 간단하게 2년 동안의 작업을 정의했다. 그러고 보면 죽음을 다루는 호스피스도 고급 문화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둘둘 말 때가 아니라, 민수 할아버지 가족처럼 아름다운 문화로 승화시킬 수준에 온 것 같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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