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즐기는 형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한참 여행 이야기를 하던 중 형은 제게 한 공동체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인도 남부에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곳이 있다'고. 그 말에 확 넘어가 버려서 군 전역을 하자마자 편도 티켓을 구입해 인도로 떠났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해외에 발을 딛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충동적인 여행의 시작이라고요? 아니 오히려 오랫동안 꿈꾸고 마음속에 그리던 곳이었기에 실행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계획도, 예측도 없이 오로빌에서의 다섯 달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도착하고 나서야 듣게 된 이야기입니다. 오로빌 공동체의 설립자 마더는 "오로빌(Auroville)이라는 공간은 종교와 인종과 성별과 문화와 국가 등등 그 모든 것을 넘어 인류의 조화를 추구하는 곳"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현재 40여 개국 약 2천 명이 모여 실험의 장으로서 늘 새로운 것이 연구되고 시도되는 곳이라 합니다. 식사시간 레스토랑에 가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시작하면 적어도 최소 5개국 이상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으니, 다양한 사람들 만나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저로서는 유토피아가 따로 없었습니다.
공동체에 머무는 시간의 대부분을 목 쉴 정도로 사람 만나는 데 투자를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면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내공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붉은 그네를 매달던(Red Swing Project) 미국 친구, 세계 그라민 뱅크(취약계층에 소액을 대출해주는 은행)를 직접 방문하고 다니던 일본 친구, 매일 일출'일몰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던 캐나다 친구, 손바닥만 한 배낭과 통기타를 늘 들고 다니던 자유로운 영혼의 덴마크 히피 친구 등등. 세계에 독특한 사람들은 죄다 모아둔 듯한 오로빌에서의 모든 시간이 소중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만남은 새로운 자극과 활력소를 늘 안겨줍니다.
저절로 배우는 것, 새롭게 인식되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친구들이 보여준 다양한 관점으로 인해 새로이 인식하게 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주말마다 열린 세계요리파티였습니다. 각국의 친구들이 정성스레 만든 전통음식을 가운데 차려놓고 손을 잡고 기도를 올린 뒤 함께 나눠 먹는 식사의 감동은 지금도 상상만으로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듭니다.
꿈만 같던 5개월간의 오로빌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나의 공간에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왠지 모를 아쉬움과 그리움이 가슴 가득 피어오르더군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5개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꿈들도 커졌습니다. 다시 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 그리고 내 삶의 무대를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넓혀 한판 벌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것이었습니다.
되돌아보니 그 이후에 시작된 세계여행. 사람들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 링커(Linker'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이어준다는 의미)로서의 미션을 삶의 방향으로 잡게 된 것 등등 대부분 발상의 모토는 5개월간의 경험이 큰 바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들과 페이스북 또는 메일을 통해 연락을 하며 지냅니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그들과의 대화는 계속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극받는다는 점이겠지요.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지만 언젠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꿈도 키워봅니다.
진정한 여행의 시작은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 시작되지 않을까요. 더불어 그때 느낀 감동을 다시 나의 터전에서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즐겁게 여행한 사람의 또 다른 미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나의 '가슴 뛰는 여행'은 'ing'인 것입니다.
이번 주부터 4주에 한 번씩 본란을 통해 '가슴 뛰는 세상' 칼럼을 싣습니다. 필자 박성익(26) 씨는 경북대 임학과를 졸업했으며 인도 오로빌, 프랑스 테제 등 세계 공동체를 탐방하며 견문을 넓혔습니다. 그는 지역 최초로 '사람도서관'을 도입했으며 최근 인간 네트워크 공동체를 꿈꾸는 회사 '아울러'를 창립했습니다.
네트워크기획 '아울러' 링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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