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北 이탈 대학생들 "북쪽 가족들 더 고생할까봐 찜찜"

체제 불안 쿠데타 가능성 하루빨리 통일만 바랄 뿐

20일 계명대 대명동캠퍼스 인근의 한 호프집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자녀 돕기 일일호프 행사에 탈북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20일 계명대 대명동캠퍼스 인근의 한 호프집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자녀 돕기 일일호프 행사에 탈북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20일 오후 5시 대구시 남구 대명동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 인근의 한 호프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발표 직후 대구 북한이주민지원센터가 주최하는 북한이탈주민 자녀 돕기 일일호프 행사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이날 행사에는 500여 명이 찾아와 후원을 자처했다. 행사가 시작되면서 센터 관계자와 대학생 자원봉사자 10여 명이 바쁘게 움직였다. 자원봉사자들은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 등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삼삼오오 모인 자원봉사자들의 대화 주제는 단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이었다.

이들 자원봉사자 중에는 북한이탈 대학생들도 있었다. 김 위원장 체제 하에서 궁핍과 통제를 피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이들은 김 위원장의 죽음에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에 대해서는 가슴 밑바닥부터 '증오와 미움'이 꽈리를 틀고 있지만 북한에서 고생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김정은 체제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도 숨길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이 새삼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는 데 대한 부담감도 숨기지 않았다.

지역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북한이탈 대학생 이정훈(가명'20) 씨는 "친구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김 위원장의 죽음을 알려줬다.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 찜찜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찜찜한 이유를 묻자 "후계자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탄탄하지 못해 쿠데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씨의 아버지와 동생은 북한에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북한 체제의 급변이 자칫 가족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2009년 한국으로 온 이 씨는 "북한에서 김 위원장은 신(神)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한국에 온 후 김 위원장이 독재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주민들을 굶어 죽게 만드는 지도자는 사회의 악과 같다"고 했다.

지역의 한 대학교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북한이탈 대학생 김소영(가명'28'여) 씨는 2008년 홀로 한국으로 넘어왔다. 가족들은 김 씨가 한국으로 온 줄도 모른다고 했다. 북한 가족의 안위가 걱정돼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는 김 씨는 "TV를 보다가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고 했다. 김 씨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나갔으면 좋겠다"며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한 것처럼 남'북한도 하루빨리 통일이 이뤄지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김 씨는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북한이주민지원센터 김창현 팀장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소식에 많은 북한이탈 주민들이 좋아했다. 하지만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걱정하는 분위기가 많다"고 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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