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자살 중학생 1년새 말못하고 겪은 친구 괴롭힘

부모에게 말하세요. 친구들도 학교에 알리세요

대구 자살 중학생은 1년 새 무슨 일을 겪었을까? 자신의 잘못도 아닌 친구의 게임 캐릭터를 해킹당하면서 자살 중학생은 마치 친구로부터 말못할 고초를 겪고도 부모에게도, 담임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부모와 교사에게 말해야하며, 청소년기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부모와 학교의 긴밀한 협조와 유대로 극단적인 상황을 막아야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왜 자살한 대구중학생과 친구를 개 끌듯 목에 줄을 매고 바닥에 떨어진 것을 먹게 하는 상황이 생겨난 것일까,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중학교에서 한반이 된 친한 친구들이 씻지 못할, 있어서는 안될 사이로 돌변하게 된 지난 한해 동안 어른들이, 부모들이 모르는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또래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지난 2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의 중학생 A군에게 올해는 '지옥과 같은' 한 해 였다. A군이 남긴 유서와 경찰이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2명과 그 외 A군의 친구를 대상으로 한 수사와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목숨을 끊은 A군의 지난 한해를 재구성하면 충분히 미연에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앞서서 너무 안타깝다.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악몽'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던 B군의 게임이 해킹 당하면서 시작됐다. 올 초 자살한 대구의 중학생과 B은 한반이 됐다. 숨진 A군은 인터넷 게임을 잘했다. B군은 A군에게 자신의 게임사이트 접속 ID 등을 알려주며 게임 캐릭터를 키워달라고 학기 초 부탁했다.

유서에서도 보듯이 부모에게 순종하며 마음이 여리고 착한 A군은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게임을 하면서 B군의 게임캐릭터를 키워나갔다.

A군의 부모는 부부 교사로 맞벌이였다. 근무시간이 정해진 교사 부부인지라 낮시간에는 집에 A군 외에는 아무도 없을 때가 많았다 A군은 B군과 또 다른 가해학생으로 유서에 이름을 남긴 1명의 친구 등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같이 게임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A군이 키워가고 있던 B군의 온라인 게임 캐릭터가 어느날 해킹을 당했다. 당연히 A군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이들의 관계는 '잘못된 만남'으로 빗나가기 시작했다. B군은 해킹당한 자신의 게임캐릭터를 복구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A군에게 용돈을 들여서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A군이 요구를 받아들이자 가해친구들은 '당연한' 요구를 하듯 정도를 넘은 지시와 명령을 하기 시작했다. 책을 빼앗거나 숙제를 대신시켰고, 담배 피우기를 강요하고 용돈으로 고급 겨울 점퍼를 구입하도록 한 뒤 이를 빼앗는가 하면 잔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지난 9월을 전후해서는 친구들의 이런 강요에 대꾸라도 할 모양이면 가해학생들은 집에 있던 목검을 휘두르거나 이종격투기용 글러브를 끼고 마구 폭행하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모든 생활에 간섭하며 '노예' 부리듯 A군을 대했다.

A군 몸에 여기저기 멍이 들어있고, 일부는 노란 색으로 변한 것도 있는 것이 발견됐다. 물고문 위협, 전깃줄을 목에 감고 바닥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를 먹도록 강요하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

수개월의 폭행과 학대, 괴롭힘을 이기지 못한 A군은 지난 20일 오전 어머니가 출근할 때 인사를 한 뒤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를 남긴 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A군은 가족들이 자신의 죽음을 잊어달라는 의도였는지 어머니 몰래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입력돼 있던 자신의 전화번호를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에는 자신을 괴롭힌 또래에 대한 원망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 그동안 자신에게 잘해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내용도 상당 부분 있었다.

20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 A(13) 군이 남긴 유서에는 그동안 친구들로부터 당한 폭행과 금품갈취에 대한 진술이 소상히 담겨 있다.

그는 유서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살을 결심하면서도 친구들의 협박에 못 이겨 '부모님께 불효했던 점'을 반성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가족 걱정을 했고 아파트 비밀번호를 아는 친구들이 집에 들어올 것을 걱정해 번호를 바꾸라는 당부를 했다. 눈물을 쏟으며 '엄마 아빠 사랑해요'로 글을 마무리 지은 뒤 두 눈을 질끈 감고 7층에서 몸을 던졌다.

◆A군 "상습적인 폭행과 갈취"

A군이 쓴 A4 용지 4장의 유서를 보면 가해자 2명의 행위는 동물적 학대 그 자체였다. 그는 친구 2명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상습적인 폭행과 갈취를 당해 견디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들은 매일 A군의 집에 찾아와 지속적으로 폭행, 갈취, 협박했다. 단소로 폭행하고, 전선으로 손을 묶어놓고 엉덩이를 때렸으며 발로 차기도 했다는 것. 또 피아노 의자에 엎드리게 한 후 칼로 상처를 내기도 했고, 심지어 팔에 불을 붙이려고도 했다고 A군은 유서에서 밝혔다. 심지어 목에 줄을 걸고는 흘린 음식물을 입으로 주워 먹게까지 했다고 했다.

또 A군의 집에서 라면, 견과류 등을 마음대로 먹고, 옷까지 뺏어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서에는 친구들이 강제로 컴퓨터 게임을 하도록 협박했고, 담배를 피우게 했으며, 수업시간에 공부도 하지 못하게 방해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물로 고문을 하고, 모욕을 줬으며, 문제집도 뺏어갔다고 밝혔다. 그들에게 돈을 바치기 위해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는 A군. 이달 들어 수차례에 걸쳐 자살을 결심했지만 어머니가 눈에 걸려 포기했다고 적었다. 친구들의 괴롭힘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미치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A군은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고도 했다.

◆경찰 "가해 학생 철저 조사"

대구 수성경찰서는 A군이 유서에서 거론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괴롭힘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2명을 불러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해당 학교 측의 학생 생활 지도에도 문제가 없었는지, 지금까지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이유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망연자실한 부모와 이웃들

A군의 부모는 "학교에서 학생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야 할 것이다"며 "대한민국에 살기 싫다. 유서는 아들이 당한 괴롭힘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울먹였다. 이웃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학교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학교와 교사가 똑같이 직무유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아동청소년상담센터 황정향 원장은 "청소년들은 친구들과의 집단 문화가 중요한데 초기 단계에서 갈등을 치유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뉴미디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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