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아양교에 서서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이제 비누거품이 된 금호강

저녁햇살 타고 누나의 긴 목소리.

강둑 위를 통통 굴러 왔었지.

아양교 건너 작은 고개 큰 고개 오를 때

사과 상자 가득 실은 구루마.

당기는 말등 짙은 벽돌색으로 젖어 헉헉

연방 고함 지르며 밀어대는

아버지 땀 흐르는 목소리 지금도 힘겹다.

나무상자에 무릎 맞대고 앉아 흔들리는 홍옥들만

수학여행 떠나는 기차만큼 신 나 있었다.

아직도 군용트럭 소리가 굴러다니는 자갈밭

운전병 기합소리는 메꽃으로 하늘거리고

아버지 어깨가 일찍 기울어진 이유를

알겠다.

칠성시장 도착하기까지

그 먼 시간 달려오고 있었던가 보다.

금호강물 아양교 발목잡고 끄르륵대고 있다.

  -'아양교에 서서' 부분

'홀로서기'라는 시집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는 서정윤 시인의 최근작입니다. 시인은 아양교 다리 위에서 금호강을 바라보고 있네요. 강의 이미지는 힘이 셉니다. 그래서 강을 바라보는 사람은 삶, 역사, 시간 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요. 이 시도 그 이미지의 힘 속에 살아 있습니다.

강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과거와 현재는 강물의 흐름처럼 맞물려 있습니다. 이 시에 과거와 현재가 한 몸으로 섞여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속에서 홍옥을 가득 실은 아버지의 말 수레는 영원히 칠성시장에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칠성시장이 멀어서가 아닙니다. 금호강물이 아양교 발목잡고 머물려 하듯, 아버지에게로 흐르는 기억이 시인의 마음속에서 흐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끄르륵대는 건 강물일까요, 시인일까요? 시인에게 물어보시길.

시인·경북대 교수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오늘 법원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에 대한 구형 결심 공판이 진행 중이며, 특검이 사형 또는 무기형을 구형할 가능성...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9일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2026 장학증서 수여식'에 참석하여 새롭게 선발된 장학생들과 만났다. 이날 이 사장...
경기 파주에서 60대 남성이 보험설계사 B씨를 자신의 집에서 약 50분간 붙잡아둔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 남성 A씨는 반복적인 보험 가입 권...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