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자가 줄어들면서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1월은 혈액 수급의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헌혈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은데다 설 연휴까지 겹쳐 일부 혈액형의 경우 재고가 바닥 수준으로 떨어졌다. 헌혈은 환자를 살리는 생명줄이다.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추운 겨울 날씨만큼 냉랭하게 얼어붙은 헌혈의 현주소를 점검해 봤다.
◆피 마르는 혈액 재고
대구경북혈액원에 따르면 이달 16일 오전 10시 현재 지역의 혈액 재고량은 2.6일분으로 적정 재고량 5일분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혈액형별로는 A형과 O형이 각각 1.2일분의 혈액만 남아 있어 재고 상태가 가장 심각하다. AB형의 재고량도 3.6일분으로 적정 재고량 아래로 떨어져 있다. 그나마 B형이 5.5일분의 재고량을 기록, 적정 보유량을 간신히 넘겼다.
특히 A형과 O형은 만성적인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A형과 O형의 경우 우리나라 인구의 60~70%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혈액형에 비해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혈액(전혈 기준)은 455유닛(unit). 이 가운데 A형과 O형이 차지하는 비율은 62%다.
혈액 부족은 대구경북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이달 10일 기준 전국의 혈액 보유량은 3.1일분에 머물러 있다. A형과 O형의 혈액 보유량은 각각 1.7일분과 2일분에 불과하며 B형은 5.1일분, AB형은 5.2일분의 재고량을 기록했다.
혈액 부족은 이달 말 절정을 이룰 것으로 분석된다. 추위로 헌혈 인구가 감소하는데다 설 연휴까지 끼어 있기 때문. 대구경북혈액원 관계자는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1, 2월의 헌혈량은 다른 달에 비해 10% 정도 줄어든다. 최근의 헌혈 추세를 감안하면 설 연휴 기간 혈액 부족 사태가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 300만 명 이상 헌혈해야 혈액 자급자족
우리나라는 혈액 자급자족 국가가 아니다. 현재 수혈용 혈액은 헌혈로 충당을 하고 있지만 의약품 원료로 사용되는 혈장은 자급자족이 안 돼 매년 일정 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지난해 대한적십자사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박순자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약품용 혈장 수입 규모는 2008년 661억원, 2009년 735억원, 2010년 56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수혈용뿐 아니라 의약품용 혈액까지 자급자족을 하려면 연간 300만 명 이상이 헌혈을 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헌혈자는 250여만 명에 머물러 있다.
◆헌혈이 감소하는 이유
혈액 부족 원인은 최근 몇 년 동안 헌혈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의 헌혈자는 2009년 21만4천449명을 기록한 이후 2010년 21만3천26명, 지난해 21만1천723명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국적인 경향도 마찬가지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채혈된 혈액량(11월 말 기준)은 223만8천235유닛으로 2010년 같은 기간에 비해 25만 유닛 이상 줄어들었다.
헌혈 감소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겨울철 들어 헌혈이 줄어든 것은 계절적인 원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연중 헌혈 인구가 감소한 것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천안함 사태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군부대 훈련이 강화되면서 군인들의 단체 헌혈이 줄어든 것이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전국을 휩쓴 구제역 파동과 여름철 집중호우에 따른 수해도 헌혈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헌혈자 관리 방침이 강화된 것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6월 충북 청주에서 헌혈을 한 대학생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자들이 헌혈 바늘을 제거한 후 침대에서 10분 동안 의무적으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헌혈자 수가 감소했다. 특히 국내 헌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단체 헌혈의 경우 10분 의무 휴식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또 헌혈 감소는 저출산'고령화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라는 지적도 있다. 고령화사회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혈액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헌혈이 가능한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구경북혈액원 관계자는 "고령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사회 구조적 요인과 폭우 등 자연재해, 북한 문제 등 대외 악재가 겹쳐 헌혈이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헌혈 감소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구조적인 요인이다. 자연재해와 대외 악재 등이 일시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구조적인 문제는 지속적으로 헌혈 부족 사태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대책은?
혈액 재고량이 바닥을 드러내자 최근 대한적십자사는 등록헌혈자 60여만 명에게 헌혈 참여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구경북혈액원도 다음 달까지 헌혈자에게 영화관람권 또는 유명 제과점 빵 교환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또 대구 중심가에서 헌혈을 장려하는 캠페인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혈액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체 헌혈의 성격이 강한 학생과 군인에 대한 헌혈 의존도를 낮추고 개인 헌혈 의존도를 높이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서장수 칠곡경북대병원 진단검사센터 교수는 "일회성 캠페인으로는 고령화에 따른 헌혈 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헌혈 연령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국내 헌혈은 대부분 20대가 책임지고 있다. 선진국처럼 30대, 40대, 50대까지 헌혈 인구를 확산시켜야 한다. 특히 헌혈에 소극적인 여성의 헌혈 참여를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헌혈모임을 활성화시키는 등 사회적인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중장년층의 경우 장래 본인이 사용할 혈액을 헌혈을 통해 미리 사회에 맡겨 놓는다는 생각으로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혈사업 활성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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