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현대백화점이 개장한 후 대구 중구 약령시장 건물 임대료가 껑충 뛰자 약재상들이 속속 빠져나가면서 약전골목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약재상 80%가량은 세입자로, 건물 임대료가 두 배 이상 뛰어오르면서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약전골목 뒤편으로 물러나거나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 중구 현대백화점 맞은편에서 4년째 약업사를 운영 중인 김영희(가명'60'여) 씨는 이번 달 이사를 갈 예정이다. 건물 주인이 현재 60만원 남짓한 월세를 이번 달부터 200만원 넘게 받겠다고 통보했기 때문.
김 씨는 4년 전 현대백화점 공사로 세들어 있던 건물이 헐리는 바람에 현재 영업장으로 이사 왔는데 다시 이삿짐을 싸야 할 처지다. 김 씨는 "약 한 봉지 팔아서 얼마 남지도 않는데 200만원 넘는 월세는 도저히 견딜 방법이 없다"며 "우리 가게 주변에서 한약방을 하던 사람들도 월세 부담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고 푸념했다.
임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해 백화점과 비교적 먼 곳으로 이사를 한 약재상들도 있다. 17년간 약전골목에서 약업사를 꾸려온 A씨는 지난달 임대차 계약기간이 끝나자 이사를 했다. 60만원이었던 월세가 200만원으로 오르자 아직까지 임대료가 오르지 않은 약전골목 뒤편으로 옮겨갔다.
A씨는 "백화점과 가까울수록 임차료를 많이 내야 하니 나를 비롯해 20~30여 개 업소가 임대료가 더 싼 곳으로 이동했다. 임대료 문제는 시와 약령시보존위원회가 노력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지난해 대구경북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약령시장 일대 전체 한방 관련 업소 중 자가 비율은 20%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세한 한방 관련 업소들이 백화점 개점 이후 임대료 상승의 직격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방 관련 업소들은 골목 뒤편으로 점차 밀려나거나 아예 약령시장을 떠나고 있다. 약령시보존위원회에 따르면 백화점 공사가 시작된 2009년 210개소였던 약업사, 한약방 등 한방 관련 업소가 지난해 말 181개로 줄어 2년 만에 29곳이 사라졌다.
한약방이 밀려난 자리에는 다른 업종의 가게가 들어서고 있다. 최근 6개월 사이 커피숍 5곳이 문을 열었고 파스타 전문점 2곳, 미용실 등이 약전골목 곳곳에 새로 터를 잡았다.
커피숍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백화점이 입점한 뒤 주변에 유동 인구가 많이 늘었고 앞으로 백화점 위주의 상권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커피 중심의 카페를 개업했다"고 말했다.
약령시장 관계자들은 대구시를 비롯한 행정기관이 과도한 임대료 인상으로부터 약재상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약령시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사)약령시보존위원회 강영우 이사장은"약령시장 전체 상인의 80%가 세입자인데 이들의 평균 수입으로 치솟는 월세 부담을 이길 수 없다. 백화점 입점이 약령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대구시가 350년 역사의 약령시 보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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