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집권黨 간판 바꾸는데…예비후보가 무슨 죄?

홍보물 전량 교체에 최대 1천만원대

-문 : 다음 제시어가 가리키는 조직을 고르시오.

▷제시어 : 고마해라 마이묵었당, 꼴보기싫당, 두나라당, 디도스공격당, MB탈당

①국회 ②검찰 ③새누리당 ④민주통합당 ⑤재벌

정답은 이달 2일 새롭게 당명을 바꾼 3번 새누리당이다. 씁쓸하게도 제시어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지난달 말 실시한 새 당명 공모 과정에서 접수된 내용들이다. 접수된 전체 공모작 9천여 건 가운데 이처럼 '삐딱한' 내용의 응모작이 5%나 차지했다.

같은 기간 진보신당이 실시한 '한나라당 제 이름 찾아주기' 공모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 '돈이최고당' '기득권만세당' 'Money Money해도 땅나라당' 등의 까칠한 민심을 담은 당명들이 접수됐다.

한국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조롱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이름 바꿨지만…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집권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여과 없이 표출된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차떼기'돈봉투'권력형 비리 사건, 재벌'부유층 위주의 경제정책, 서민물가관리 실패, 부실한 일자리 창출 정책 등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며 "국민들과의 소통에 소홀했던 여권에 올 것이 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민심을 접하고 짐짓 당황하면서도 국민들의 질책을 겸허하게 소화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황영철 한나라당 대변인은 "그동안 한나라당과 정치권에서 국민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원하는 것들조차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응모작들에 담겨 있는 진짜 민심을 깊이 있게 파악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권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표시는 당명을 바꾼 뒤에도 여전하다. 2일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자 인터넷 공간이 다시 술렁였다.

새 당명이 "새로운의 '새'와 나라의 순우리말 '누리'가 합쳐진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뜻한다"는 당의 공식 설명에도 불구하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당명 변경이라며 비난 글이 쇄도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2일 오전에만 포털사이트에 네티즌들은 '새누리당? 또다시 누리겠다는 의도?' '누리당이니 먹고 놀자는 느낌이다' '차라리 새 대갈당으로 해라~~ㅉㅉ'라는 제목의 비난성 게시글이 줄을 이었다.

정치 문가들은 여권에 대한 정치권의 실망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치 영역에 대한 지나친 희화와 감정적 비난은 궁극적인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수위 조절을 당부했다.

◆죽어나는 예비후보

총선이 7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꿔달자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해 온 예비후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장 현수막, 명함, 어깨띠 등을 교체해야 하고 예비후보 홍보물에서도 한나라당 간판을 바꿔야 하는 등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후보에 따라 모두 새로 제작에 들어갈 경우 비용이 1천만원 단위를 훌쩍 넘어서는 경우도 있어 선거비용 부담만 늘어나게 됐다. 실제 당명 변경에 따른 예비후보자들의 현수막'명함 등 홍보물을 새로 제작하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은 평균 600만원 정도다. 선거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외벽 현수막을 수정할 경우 300만원(150㎡ 기준)가량이 들고, 현수막을 철거하고 재설치하는 데 드는 크레인 작업과 인건비가 각각 30만원, 60만원 정도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여기다 어깨띠(50개 기준) 30만원, 사무실 입구 및 실내 광고물도 50만원 정도가 추가 발생한다. 광고 도안(디자인)에도 50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명함 제작(3만 장 기준)에 50만~100만원 정도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당명 변경에 따른 기회비용도 발생한다. 추가 비용이 선거비용제한액에 포함돼 다른 선거운동에 드는 비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지역 선거비용의 경우 지역별로 1억6천700만원에서 2억2천500만원 사이다.

그래도 공천만 받으면 괜찮다. 간판을 바꿔 달았는데 공천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더 억울하다. 만약 한나라당 간판을 새누리당으로 바꿔 달았다가 결국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에는 또다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이중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바뀐 당명으로 선거운동에 나서야 하는 것도 부담스런 대목이다.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 불리던 지역에서 새로운 당명으로 선거운동에 나설 경우 유권자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고 자칫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역의 한 예비후보는 "경제적 부담도 크지만 지역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인지도와 지지도가 워낙 높아 유권자들의 혼란을 막고 새 당명을 인지시키는 것도 큰 부담이다"고 했다. 그는 "새누리당 이야기를 언제 하고, 설명은 또 어떻게 하느냐. 무조건 손가락 하나만 펴들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혀를 찼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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