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마음의 책] 침략 정당화…일본인들에겐 임진왜란이란

그들이 본 임진왜란/김시덕 지음/ 학고재 펴냄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임진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임진왜란이다. 우리는 대체로 임진왜란을 '왜구라는 도적 집단이 일으킨 한때의 난리'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임진왜란은 동북아시아 역사의 한 시기에 여러 나라들이 한반도에서 대규모로 충돌한 국제전쟁이었다. 이런 국제전은 663년 백제'일본 연합군과 신라'당 연합군이 충돌한 이래 유례 없는 것이었다.

그 결과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에서는 정권이 교체되었고 한반도의 왕조는 급격히 보수화했다. 임진왜란은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결정지었으며, 동북아시아는 그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2012년 임진년. 북한은 권력의 3대 세습이 진행되고 있고, 우리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경제대국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급격히 군사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은 일본 등과 연대해 중국 견제에 나섰다.

우리 역사가의 해석과 평가에 기초했던 기존의 임진왜란 관련서에서 벗어나 일본인의 의식 및 무의식이 드러난 일본인의 입장에서 본 전쟁 모습을 그려볼 필요가 더욱 커지는 이유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으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을 때에만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도 시대 200여 년간 베스트셀러였던 오제 호안의 '다이코기', 하야시 라잔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등 전기물, 그리고 호리 교안의 '조선정벌기' 같은 군담소설과 역사소설에 주목했다.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은 대중적 읽을거리를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자신들의 침략 전쟁을 어떻게 합리화하고 있는지, 또 그들이 '보고 싶어한 전쟁의 이미지'는 무엇인지를 소개한다. 더욱이 '에혼 조선군기' '에혼 다이코기' 등에 삽입된 목판화와 채색화 30여 점을 수록해 에도 시대 일본인들이 지녔던 임진왜란의 이미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전쟁에 대해서도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인식이 그대로 반영됐다. 19세기 중반까지 일본에서 나온 여러 임진왜란 관련 문헌들이 '조선 침략'을 '정벌'로 한결같이 옹호하는 반면, 외국에 의한 일본의 '정벌'은 부당한 '침략'으로 서술하고 있다. 사쓰마번을 지배한 시마즈 가문이 작성한 임진왜란 문헌인 '정한록'(征韓錄)은 원나라와 고려의 일본 침공에 대한 복수라는 논리로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소개된다. 평화교섭을 담당했던 심유경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독살설'과 행주대첩 당시 일본 측에서 닌자가 활동했다는 흥미로운 문헌기록을 제시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낳은 불멸의 영웅 이순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런데 이순신이 일본에서 '영웅'으로 불리게 된 계기가 류성룡의 '징비록' '서애선생문집' 등이 일본으로 유입된 18세기 초 이후라는 것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근세 일본학자들이 이순신을 영웅시한 저의에 대해 저자가 분석을 시도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그들을 알아야 우리를 지킬 수 있다. 240쪽, 1만5천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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