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구 전문계고)에 대한 '先 취업, 後 진학' 정책이 최근 고졸자 고용 확대 바람을 타고 힘을 얻고 있다. 늦어도 3학년 1학기, 빠르면 2학년 2학기만 돼도 '직장'을 잡는 특성화고 학생들. 특히 대기업 취업을 확정받은 우수한 특성화고 학생들은 또래 인문계고 학생들뿐 아니라 대학 졸업자들로부터도 부러움을 살 만하다.
이런 경향은 지방 소도시 학교에도 확산되고 있다. 구미전자공업고(마이스터고)와 구미여자상업고에서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남다른 진로 설정으로 대기업 취업의 꿈을 이룬 여고생 2명을 만나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다.
◆LG이노텍 연구원으로 채용된 김민지 양
"'여학생이 무슨 공고 진학이냐'고 되묻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
올해 3학년이 되는 구미전자공고의 김민지 양은 올해 2학기가 되면 LG이노텍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LG이노텍은 스마트폰, 자동차, 카메라 등에 필요한 각종 부품을 개발'생산하는 국내 최대 부품소재회사. 민지는 2학년이던 지난해 6월 서류'면접 시험을 거쳐 이곳으로부터 채용을 확정받았다.
"2학년 1학기 때 여러 기업들이 우리 학교를 방문해 채용설명회를 개최했었어요. LG이노텍의 경우 학교 선배님이 직접 회사를 설명해 주셨는데 좋은 인상을 받았지요."
민지가 LG이노텍 연구원으로 채용된 것은 구미전자공고 측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초임 연봉 2천800만원(성과급 제외) 수준으로 4년제 대졸자들도 부러워할 만한 보수를 받는다. LG이노텍에 취업한 동급생 40명 중 민지를 포함한 3명이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이 학교 최돈호 교장은 "고졸 출신 기업 간부들 중에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한 분들이 많다. 그분들이 민지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지는 일반계고에 갈 실력이 충분했다. 중학교 내신이 3% 이내였다. 중학교 선생님들은 성적이 아깝다며 입을 모아 일반계고행을 권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보다는 소신을 택했고 구미전자공고에 수석 입학했다. 민지는 구미전자공고 1기 마이스터고 입학생이다.
마이스터고의 학업은 녹록지 않았다. 1학년 때 국어, 영어, 수학 등 인문과목 이외에 전자회로, 전기회로, 컴퓨터 일반, 디지털 논리회로 등 대학에서나 배울 법한 과목들을 공부했다. 방과 후 강좌에서는 토익과 전공 심화 수업을 하며 실력을 닦았다.
민지의 이런 취업성공 배경에는 구미전자공고만의 특출한 취업지원 시스템이 있다. 이 학교 경우 현재 2학년 재학생 269명 중 240명(89%)이 취업이 이미 확정됐다. 그중 대기업 취업자가 185명(77%)이나 된다. 구미전자공고는 취업이 확정된 2학년들을 대상으로 LG전자반, LG이노텍반, 삼성전자반, LG디스클레이반, 삼성모바일반 등 대기업 10개 반과 벤처'강소기업 2개 반을 운영한다.
구미전자공고의 높은 조기 취업 성과는 '채용보장 산학협력' 덕분이다. 이 학교와 채용 협약을 체결한 기업체는 매년 6월 초 합동 기업설명회를 열고 학생을 선발한다. 취업이 확정된 2학년 학생들은 그해 2학기부터 산업체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취업보장 맞춤반'에서 수업을 받는다. 이런 성과가 알려지면서 구미전자공고의 신입생 성적은 마이스터고 전환 1기인 2010학년도 35%, 2011학년도 26%, 2012학년도 17%로 매년 껑충 뛰고 있다.
민지는 "딸이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며 "앞으로 연구원으로 성공하기 위해 외국어 공부와 전공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삼성생명 사무원으로 채용된 김소연 양
"대학은 취업부터 하고 나중에라도 갈 수 있잖아요."
구미여자상업고 3학년인 김소연 양은 지난해 2학기부터 구미 삼성생명 원호지점에서 정규 사무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특성화고에서는 취업이 확정되면 업무 숙련 기간으로 수업을 대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소연이는 "보험설계사(FC)들을 관리하면서 사무 전반을 담당한다"며 "금융기업의 창구에서 일을 하는 친구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사무직도 만만치 않다"며 수줍게 웃었다.
학교 측에 따르면 소연이가 받은 연봉은 3천300만원 수준. 4년제 대졸자들도 선망하는 금융권 취업의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소연이도 중 3때 고교 진학을 앞두고 적잖은 갈등을 했다. 일반계고에 진학하기에는 조금 모자라고 특성화고로 가기에는 아까운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가서 4년 동안 비싼 등록금 내고 또 취업 준비에 매달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들더군요. 그래서 과감하게 특성화고를 택했죠."
구미여상 1학년에 진학한 소연이는 학업에 매달렸다. 특성화고가 웬 학업이냐고 묻겠지만, 금융권 취업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메달'이 아니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회계 공부를 열심히 해 2학년 때는 경상북도 주최 특성화고 고교생 경진대회 회계 부문에 학교 대표로 출전해 금상을 받았고 3학년 때는 전국대회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워드프로세서, 전산회계, 정보기기운용기능사 등 자격증도 열심히 취득했다.
금융권 취업에는 탄탄한 기본기가 큰 힘이 됐다. 학업에 열중하면서 3년 내내 전교 최상위권 성적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2학년이던 지난해 4월 삼성생명에 지원해 최종합격했다.
네 자매 중 맏이인 소연이는 또래보다 의젓해 보였다. "학교생활이 직장생활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금융권에선 특히 직장 동료와의 화합이나 올바른 인성을 중시하는데, 평소 학교생활 습관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구미여상은 대구경북에서 최우수 취업 실적을 내고 있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특성화고 취업기능강화 육성사업 최우수교로 선정됐고, 2년 전 40%대이던 취업률이 현재 70%를 넘어섰다. 금융권 고졸 채용 문이 넓어진 지난해 삼성생명, 외환은행, 농협중앙회, 한국증권협회 등 금융권에 10명, 삼성전자 등 대기업 사무직에 20명이 합격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금융권, 대기업 사무직 취업을 목표로 '취업엘리트반'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1학년 40명, 2학년 38명으로 학업성적이 30% 이내에 취업의지가 강해야 선발된다. 하애덕 교장은 "과거 '실업계'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특성화고마다 취업 지도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며 "소연이 같은 취업성공 사례가 1, 2학년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다"고 대견해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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