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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의 시와 함께] 가출(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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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절인가 결별인가 4주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의사는 언젠간 돌아온다 기다리라지만 집나간 아이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마루 밑으로 굴러간 실 뭉치가 있었다 실마리를 잡고 실실 당기니 더 어둔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따위 누구도 손길을 뻗혀주지 않았다 목소리도 무심 가운데 달아난 게 아닐까

가출이 비로소 가출을 돌아보게 한다 목소리가 떠난 말은 말이 아니었고 돌아와 라고 하기엔 추운 시간이 흘렀다 본질은 늘 사후에야 발견된다 미안하다 홀대했던 과거여

잘 있으니 찾지 말라고 기다리지 말라고, 마루 밑의 털실 뭉치를 밖으로 나오게 한 건 에멜무지 고양이의 발길질이었지 목소리는 이 엄동 잘 지내고 있을까 집구석 살림 달라진 것 없는데 고양이 발을 기다려도 좋을까

섬세한 감성을 지적으로 풀어내는 이규리 시인의 작품입니다. 이 시인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목소리가 가출한 것이라 표현하고 있네요. 가출에는 다 이유가 있지요. 무심하고 홀대한 탓이겠지요.

우리의 삶이 재미있는 것은 소중한 것이 늘 무심한 대접을 받고 홀대받는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누구나 이 사실을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또 재미있는 것은 소중한 것이 가출한 뒤에 늘 뒤늦게 후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철이 들었다는 것은 이 세 가지 재미를 많이 누렸다는 뜻이며, 제 삶의 마루 밑으로 굴러들어간 실 뭉치가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또 무심하게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릴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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