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의 소식이 신문이나 TV에 보도가 되어도 놀라거나 이슈가 되는 일이 점점 옅어져간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자살이란 단어가 익숙해졌고 흔하게 선택하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참으로 불행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괴로울 때가 있고, 살다 보면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 있을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괴로움이나 역경의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현재의 생애뿐 아니라 다음 생의 삶까지 자신을 괴로움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불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종교는 자살을 잘못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존재하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육신의 인연이 다하여 육신의 구성요소가 뿔뿔이 흩어져갈 때도 그 욕망 때문에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된다. 불교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세 가지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감각적 쾌락에 관한 욕망(欲愛'욕애), 존재하려고 하는 욕망(有愛'유애), 존재하지 않으려고 하는 욕망(有無愛'유무애)이 그것이다. 앞의 두 가지 욕망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므로 굳이 설명을 길게 할 필요가 없겠지만, 존재하지 않으려고 하는 욕망은 단순한 방식으로 이해하기가 많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현실의 상황에 대한 불만족이나 자신의 내면적 갈등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존재함에 대한 염오심(厭惡心)을 일으켜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욕망은 현재를 살아가고 다음 생에 또 존재하는 원동력이 된다.
집착이 아닌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삶의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지혜롭고 올바른 노력을 하여 스스로 행복하고자 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삶이 소중한 만큼 다른 이의 삶도 그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는 일은 자신을 더 큰 행복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된다.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는 일이 힘들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똑같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며 불평불만이 쏟아지게 되어 있다. 또한 욕망이 충족되더라도 그 충족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찰나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지금 어렵고 힘든 일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다음 생은 더 힘들어지게 됨은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분명한 진리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자신의 문제들을 헤치고 나가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대연 스님(인오선원 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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