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 어른들이 사라졌다.
과거에는 청소년이 담배를 피우다가 어른이 나타나면 담배를 감추면서 슬금슬금 도망치기에 바빴다. 일진이건 칠 공주파라도 마찬가지였다.
어른은 마을의 전통과 기강을 굳건하게 지키는 책임자였다. 어른의 행동은 국가에서 제정한 법을 앞서는 기준이었고, 선악을 구별하는 잣대였다. 어른의 행위를 따라함으로써 아이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마을의 어른들이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조선시대, 버릇없는 아이에게 멍석말이가 존재했다. 오늘날의 잣대로 봐서는 인권유린이고 반인륜적 행위임에 분명하다. 멍석에 감싸놓고 동네매를 가했어도 버릇이 고쳐지지 않으면, 마을의 어른들은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다시는 고향에 돌아올 수 없도록 고향에서 영원히 추방시키는 출향(出鄕)을 선고했다.
국가경영에 있어서 장단점은 항상 존재한다.
개발독재시대,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군부가 그 책임을 맡았다. 장점만 부각시키거나 단점만 부각시키는 주장은 금물이다. 중용지도(中庸之道)가 근본이다.
세계 최빈국에서 그나마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그들이 이룩해 준 순기능이었고, 인권탄압과 부정부패의 양산은 그들이 남긴 역기능이다.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었고,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한 어머니가 겪은 고통이었다.
이들에게 저항한 민주화 세력이 부상하는 것, 또한 당연한 역사 흐름의 귀결점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편성한 위장된 민주화 세력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실을 감춰야만 생존이 가능하기에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알고 있는 세력들을 잠재우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이른바 마을의 어른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이다. 어른이 행한 아흔아홉의 선행은 무시하고 단 한 번의 악행만 부각시켜서 아직 성숙되지 못한 영혼들을 호도했다. 이들은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면서 유명 정치가로 혹은 인기 연예인으로 변신하여 돈과 명예를 독차지하기 시작했다.
금지된 장난, 멍석말이나 출향을 각오해야 할 짓거리를 하면 할수록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는 시대, 이러한 시대에 어른들이 존재할 자리는 없다.
지금의 젊은 사람도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젊은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는 금수의 사회가 아닐까.
정재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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