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은 가족의 또 다른 이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의 마음가짐은 동물을 하나의 온전한 생명 인격체로 대한다는 사실이다.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이들은 식구 1명이 더 생긴 것으로 여기고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가정은 식솔 2명이 더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귀찮고 힘들고 돈 드는 일이 많지만 이는 반려동물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두 마리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세 마리 이상을 키우는 반려동물 다육가들은 어떨까? 이런 생각에서 다육가들을 만나 보람과 애환을 들어봤다. 최동학 동인동물병원 원장 등의 추천과 수소문을 통해 찾은 반려동물 다육가들을 만났다. 그들이 기자에게 준 첫인상은 생명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1. 3대 모녀와 4마리의 개
3대가 모여 사는 양옥순(60'대구시 남구) 씨 집에서는 사람들과 네 마리의 개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동심일체를 봤다. 양 씨 집에서 반려 동물은 한 식구가 분명했다. 한 공간에서 지내고, 서로 배려하면서 살고 있었다. 개가 넷이나 있으면 집안이 청결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다른 집에 비해 훨씬 더 깨끗한 위생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자가 찾아 와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 느낌은 평상시 모습이 맞는 것 같았다.
양 씨 가족의 생명 사랑은 3대에 걸쳐 전해오고 있다. 집에서 생명 사랑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1대 양옥순 씨-실천가 2대 박선혜(36) 씨-계승자 3대 이서윤(7'효성초교 1년) 양이 그 주인공들이다. 물론 박 씨의 남편도 동물애호가다.
양 씨 집에서 동고동락을 하는 네 마리의 개들은 이지호(2세 령'골든 리트리버종), 에디(5세 령'샤페이종), 뭉치(9세 령'스피치종), 몽실이(19세 령'잡종)다. 3대 모녀와 네 마리의 개, 이들 일곱 생명체들의 호흡은 환상적이다. 한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절묘한 평화를 유지하며 행복감을 더해가고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동물 사랑을 배워 온 이 양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기자에게 미꾸라지와 풍뎅이도 키우고 있음을 자랑했다. 나이로 따지면 뭉치나 몽실이보다 어린 이 양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사진첩 하나를 들고 왔다. 사진첩을 보니 지난해 4월 16일에 죽은 뽀탄(당시 14세 령)의 장례식 사진이 담겨 있었다. 이 양은 대구에 반려동물의 장례식장이 없어 부산까지 가서 직접 화장을 하고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이 양에게 개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가족임이 분명했다.
이 양이 사진을 꺼내자 저 멀리 있던 뭉치가 달려와 뽀탄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 얼굴을 비볐다. '왜 그러냐'고 묻자, "둘이 너무 친하게 지내다 뽀탄이가 죽자 뭉치가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였고,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짠했다.
양 씨는 "살아있는 것은 다 소중하게 여긴다"며 "이지호는 주인의 학대로 어미 개가 죽는 모습을 봐서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으며, 몽실이 역시 새끼 때 버려진 개라서 아직도 타인을 경계하고 겁이 많지만 우리 집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일곱 생명체들이 함께 살려면 감수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일단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따른 경제적 부담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매년 300만∼400만원 정도가 든다. 더불어 개들 때문에 가사도우미에게도 더욱 잘해 주려 노력한다. 그리고 집안 청소와 주변 사람들의 항의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다행히 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들이 많아 서로 불만을 표시하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고 한다.
#2. 유기견들의 대모 박영보와 김민정
팔공산 자락인 대구 동구 도동 측백수림 인근에 한 농원이 있다. 이곳에는 버려진 개들의 쉼터가 있다. 쉼터의 이름은 '호루라기'. 유기견 10여 마리가 자신들을 거두어 준 주인에게 감사하며 새 삶(새 주인)을 찾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 등에서 '대구 유사모'(유기견을 사랑하는 모임), '호루라기 쉼터' 등을 검색하면 이 모임의 활동 내역과 쉼터의 역할 등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취재를 위해 쉼터에 들어가자 난리가 났다. 10여 마리의 개가 낯선 사람의 등장에 누가 더 크게 짖는지 맞대결을 펼치는 듯했다. 어릴 때 개에 물려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는 사진기자는 깜짝 놀라 까무러쳤다. 결국 개들을 목줄로 묶은 상태에서 사진촬영을 했다.
이곳에 있는 개의 이름은 약간 촌스럽다. 달봉이, 희동이, 마빡이, 백설이, 제임스, 리차드 등이다.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은 각양각색이다. 마빡이는 주인에게 심한 학대를 받다 죽기 직전에 버려졌으며 제임스(일본 시바견종)는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4군데나 부러져 구조차에 실려가는 것을 보고 데려온 개다. 리차드는 개고기집에 팔려가 식용으로 쓰이기 직전에 구출됐다. 이들의 사연은 사람으로 치면 버려진 고아에 가깝다.
자신의 가정조차 2순위로 밀어둔 채 유기견들의 대모 역할을 하고 있는 박영보(55'여) 씨는 "내가 전생에 개들과 큰 인연이 있었나 보다"며 "지치고 힘들지만 버려진 개들을 돌보는 숙명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씨와 함께 쉼터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김민정(42'여) 씨는 아예 유기견들과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 대신 새끼 유기견 15마리가 함께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가엾은 강아지들이 입양이 될 때까지 보살피며, 건강해지면 입양 능력이 있는 주인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씨는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15년 동안 살다 6년 전 한국으로 왔는데 동물을 너무 좋아해 이 일을 하게 됐다"며 "버려진 개들이 식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니 개고기는 드시지 마세요"라고 당부했다.
#3. 일곱 고양이의 천사 언니, 황아진
동물이 좋아서 건물 안내 도우미를 하다 최근 동물병원 간호사가 된 황아진(28'여) 씨. 버려진 고양이와 개들을 보살피며 살아온 동물 천사인 그녀는 어릴 때부터 동물들을 좋아했고, 제 스스로 동물들을 보살필 때 제일 행복한 것 같아 전직을 하게 됐음을 밝혔다.
황 씨의 집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행복한 일곱 고양이는 금동이, 깜냥이, 루비, 굴비, 짱아, 금백이, 깜돌이다. 그녀가 일곱 고양이들의 언니가 된 출발은 이랬다. 황 씨의 어머니가 버려진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온 뒤 이 고양이가 커서 새끼를 3마리 낳았다. 여기에 또 다른 3마리의 고양이가 집안에 들어오면서 총 7마리가 된 것. 이들 고양이는 황 씨가 잠을 잘 때 항상 옆에 와서 포근한 잠 도우미 역할도 해준다.
개도 한 마리 있다. 지인이 선물한 강아지 순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 원래는 3마리가 함께 있었는데 13년 동안 보살펴 준 2마리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순이 한 마리만 일곱 마리 고양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황 씨는 "집안 식구들이 다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을 키우는 데 대한 갈등은 별로 없다"며 "하지만 동물들과 함께 대중교통 등을 이용할 때는 아직도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 다소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털어놨다. 더불어 황 씨는 고양이들을 많이 키우는 대가로 집안 거실에 있는 소파 등이 고양이 발톱을 가는 데 이용되고 있음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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