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각장애인위해 한국영화 한글자막 넣어주세요"

관람권확보 대책위 김정중씨 수년째 1인 시위

장애인 영화 관람권 확보를 위한 대구공동대책위원회 김정중 대표가 19일 대구 동성로에서
장애인 영화 관람권 확보를 위한 대구공동대책위원회 김정중 대표가 19일 대구 동성로에서 "한국영화 한글 자막 의무화 하라"는 수화를 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청각장애 2급인 김정중(34'대구대 일반대학원 특수교육과 박사과정) 씨는 극장에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보고 싶은 한국 영화를 눈앞에 두고도 어쩔 수 없이 외국 영화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본 한국 영화는 '도가니'가 유일하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한글 영화, 한글 자막 상영 의무화'라는 피켓을 들고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글 자막 상영 의무화에 동의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영화에 한글 자막이 들어가면 보기 불편하다"고 냉담하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장애인 영화 관람권 확보를 위한 대구공동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정중 공동대표를 19일 만났다. 공대위는 지난해 11월 청각장애인의 영화 관람권 확보를 위해 대구 9개 단체를 비롯해 전국 24개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출범했다.

그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했다. 2005년 여름 한국농아대학생연합회 회장이었던 김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의 교육권과 취업권 보장을 외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22박 23일간 국토 대장정에 나섰다. 한국 영화의 한글 자막 상영에 본격적으로 문제의식을 느낀 것도 그 무렵이었다.

김 대표는 '장애인차별금지법'도 허울만 좋을 뿐이라고 했다. 이 법(제21조)에는 '장애인을 위해 자막이나 수화 통역, 화면 해설 등 시청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한국 영화의 한글 자막 상영은 스크린 기준 300석 이상 규모의 상영관에서 2015년 4월부터 시행하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혼자서 전국 영화 상영관 좌석 수를 조사해 봤는데 300석 이상은 대구를 비롯한 광역시에는 단 한 곳도 없고 서울에 한 곳 정도 있었다. 한국 영화를 보기 위해 지역에 사는 청각장애인들이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느냐"고 따졌다.

이런 현실 때문에 극장 문턱에서 좌절하는 이들도 많다. 김 씨와 함께 릴레이 1인 시위에 참가한 김영주(20'여'대구대 특수교육 2학년) 씨는 "얼마 전에 청각장애인 친구와 동성로에 갔다가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려고 했는데 한글 자막이 없어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한글 자막 문제는 청각장애인을 가족과 친구, 이웃으로 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 씨는 조만간 1인 시위를 다시 이어갈 생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전국 청각 장애인 수는 26만400여 명으로 이들에게 한국 영화는 그림의 떡이다.

"우리 사회에 장애인을 향한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울 겁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한국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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