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살 집'이라는 화제(畵題)를 제시하면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그릴까. 주변 풍광을 먼저 그리는 사람, 집안 내부를 먼저 그리는 사람, 지붕부터 그리는 사람 등 다양할 것이다.
'알고 지내던 목수 노인이 땅바닥에 집 그림을 그렸다. 그는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에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순서로 그렸고, 맨 마지막에 지붕을 그렸다. 으레 지붕부터 그리던 내게 그의 집 그림은 충격이었다. 그는 그림으로 그칠 집이 아니라, 집으로 완성될 그림을, 집 짓는 순서에 따라 그렸던 것이다.' 신영복 교수의 '나무야 나무야'에 나오는 글을 의미만 뽑아 요약한 것이다. 저 목수 노인은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완성될 집을 머리에 그려놓고 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마 저 그림은 가족이 평화롭게 식사하고, 아늑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진짜 집이 되었을 것이다.
대선 레이스가 불붙기 시작했다. 이제 그럴듯한 갖가지 공약이 쏟아질 것이고, 반론도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경험으로 볼 때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높고, 검증은 트집 잡기가 될 공산이 크다. 이번 대선에서는 '복지'가 주요 키워드가 될 모양이다. 후보들은 출산, 보육, 의료, 노후 등에 '복지 폭탄'을 터뜨릴 것이다. 얼마 전 한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면 무상 복지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절반 가까이가 세금을 더 내지는 못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복지공약을 내세우려면 이 문제에 먼저 답해야 한다.
학교를 졸업한 수많은 젊은이와 조기 은퇴한 중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가난에 직면하고 있다. 무상 복지로 이들 모두를 먹여 살릴 수는 없다. 분배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간과하지만, 우선되어야 할 1차 복지는 '좋은 일자리'다. '분배'는 엄밀한 의미에서 2차 복지라고 할 수 있다. 일자리가 많아지면 세금을 낼 사람은 많아지고, 무상 복지 수급자는 줄어든다. 이런 구조일 때에만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다. 성장과 일자리라는 1차 복지를 외면하고, 분배라는 2차 복지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럴듯한 그림을 그린다고 튼튼하고 아늑한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붕부터 시작해 주춧돌을 그리는 사람은 집을 지어본 사람이 아니며, 쓸모 있는 집을 지어낼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무상 복지'가 화려한 지붕에 해당한다면 '일자리와 세금'은 든든한 주춧돌에 해당한다. 게다가 지붕은 비교적 고쳐 덮기 쉬우나, 주춧돌은 고쳐 놓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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