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부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때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이 흔해지고, 이를 보는 시선이 낯설거나 어색하지도 않다. 이맘때가 오면, 선글라스에 얽힌 추억이 하나 슬그머니 머리를 내민다. 지금은 안경을 벗고 자유인(?)이 됐는데 이는 라식 수술 덕분이다. 2000년도에 라식 수술을 받았으니 벌써 12년이 넘었다. 그 12년 전, 다시 12년 동안은 아침이 되면 머리맡을 더듬어 안경부터 찾아야 누군가를 식별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고도근시, 고도난시였다.
다시 색안경의 얘기로 돌아가서, 선글라스에 대한 추억은 라식 수술이 내게 준 또 다른 선물이다. 라식 수술 후 당분간은 눈의 회복을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문제는 라식 수술을 받고 난 다음부터 장마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당시 필자는 방송계에 갓 입문한 막내 작가였고, 자유롭게 휴가를 선언할 입장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비가 오는 날에도 꿋꿋하게 선글라스를 끼고 출'퇴근 버스에 올랐다. '비가 오니 안경을 벗으면 될 것을…'하면서 의아해하는 분들에게는 수술 중 혈관이 터져 당시 내 눈은 토끼 눈알처럼 붉고 붉었음을 부언한다.
선글라스를 쓰면 비 오는 날 깜장 안경을 쓰고 우산을 든 멋의 '멋'자도 모르는(?) 여자요, 안 쓰자니 빨간 눈알로 주변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는 무서운 여자가 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그러다 평생을 위해서 1주일 정도를 정류장에서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한몸에 받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앞이 길었다. 이야기의 결론은 장마철에 선글라스를 써야 했던 1주일, 나는 사람과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경험과 마주했다. 비 오는 날 안경을, 그것도 색안경을 써야 하다 보니,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흐린 날, 비 오는 날,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이없어했고, 심할 때는 비웃기도 했었다. 되돌려받듯, 색안경을 착용하는 동안 이전에 한 행동들과 표정들을 수십 번 마주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반성했다. 타인의 사정과 상황을 모른 채 비웃거나 힐난하지 말자고. 지난 12년 전, 눈을 가린 색안경 덕분에 마음을 덮고 있던 '색안경'을 벗게 됐고, 그 경험은 그때만큼 지금도 소중하다.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비롯되는 오해와 불신이 일상에서도 흔하다. 심지어 어떤 사안을 두고 얘기할 때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거나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만난다. 창의성의 시대라고 떠들지만, 생각은 막혀 있고 고민하기를 주저한다.
그런 분들에게는 '벼룩서커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진짜로 벼룩? 그렇다! 진짜 벼룩!
심지어 그 역사가 무려 15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벼룩 공연은 183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영국에서 카니발의 주요 공연물이었다고 한다. 벼룩은 뛰는 벼룩과 달리는 벼룩으로 선별되어 특성에 따라 금실로 제작된 마차를 끌거나 공을 차는 묘기를 선보였는데, 벼룩의 묘기는 자신의 무게보다 무려 2만 배에 달하는 무게를 움직일 수 있는 타고난 힘과 뛰는 능력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서커스 앞에서는 '뛰어 봤자 벼룩'이라는 우리의 속담이 무색해진다. 벼룩 팔자도 태어난 곳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아직도 그럴 수도 있다는 유연함 대신, '그런 게 어디 있어'라는 분들에게는 황당한 이색 대회를 소개한다. '9cm 이상의 하이힐 신고 달리기', '회사 의자 달리기', '반소매 입고 스키 타기 대회', '물속에서 다림질하기 대회', '100시간 동안 샤워하기' 등. 하지만, 이색 대회는 이게 끝이 아니다.
다수가 존중받는 만큼, 소수와 그들의 생각도 존중받는 시대이다. 역설적으로 일상적인 것을 선호하면서도 사람들은 색다른 것에 더 흥미를 가진다. 방송을 보라! 늘 알던 것에 눈길이 가는가, 아니면 처음 보는 것에 눈길이 가는가? 그런 점에서 방송작가는 이런 '이색대회, 벼룩서커스' 앞에서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사전] 색안경: 주관이나 선입견에 얽매여 좋지 아니하게 보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색안경(선글라스)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는 계절이다. 하지만 마음의 색안경을 벗는 이는 늘어났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유연해지면 상상이 주는 유쾌함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혹시 지금, 뇌리를 치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는가? 아니면 이미 가지고 있고 시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바로 전화주시길…. 방송국은 365일, 24시간 기발하고 색다른 시도와 아이디어를 환영한다.
성교선/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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