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봉이 김선달 유전자

중세시대 유럽에 금 세공업자들이 있었다. 금 세공업자들은 아주 튼튼한 철제 금고를 갖고 있었기에 부자들은 금과 은 등 귀금속을 세공업자에게 맡기고 보관증을 받아갔다. 보관증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세공업자는 증서에 명기된 금액만큼의 금화를 내줬다. 이 때문에 세공업자의 증서는 지불 수단 즉, 화폐로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세공업자가 농간을 부렸다. 보관증 소유자들이 한꺼번에 금을 찾는 일이 없다는 점에 착안한 그는 맡아놓은 금의 양을 훨씬 넘는 보관증을 몰래 만들어 유통시켰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금 세공업자의 사기 행각은 들통이 났다. 보관증 소유자들이 몰려갔지만 금 세공업자는 줄행랑을 친 뒤였고 금고는 텅 비어 있었다.

금 세공업자의 사기 행각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데 머리 회전이 빠른 일부 은행가들은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바로 이거야!"

금융업 종사자들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금 세공업자들의 사기 행각은 현대 은행 비즈니스의 원형이 됐다. 은행들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의 10%(법정 지급준비율)만 남겨놓고 나머지 돈을 굴려 수익을 낸다.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은 신용 창출이라는 경제 용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엄밀히 말해 '신용 창출=빚(남의 돈)'이다.

요즘 우리나라 금융계를 뒤흔들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를 보면서 중세시대 금 세공업자들의 부도덕한 행태를 떠올린다.

저축은행 사태는 도덕적 해이의 백화점 같다. 퇴출된 한 저축은행의 회장은 수백억 원의 돈을 빼돌려 해외로 밀항하려다 붙잡혔는데 알고 보니 164억 원의 빚더미에 앉은 신용 불량자였다. 자신의 신용도로는 은행에서 단돈 1원도 빌릴 수 없는 사람이 남의 돈 수백억 원을 주무른 셈이다. 지난해 7월 퇴출된 한 저축은행의 창고에는 마니아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수백억 원 상당의 고급 오디오와 외제차가 즐비했다.

저축은행은 원래 상호신용금고로 불렸는데 어느 틈엔가 '은행'으로 이름이 격상됐다. 금융 당국은 이런 선심을 썼지만, 정작 저축은행의 부실 대출과 경영진 비리에 대한 감시 감독엔 소홀했다. 은행이라는 명칭이 주는 신뢰감과 "더 이상 저축은행 퇴출은 없다"는 금융 당국의 약속을 믿은 채 돈을 맡긴 예금주들은 분노에 치를 떨고 있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금융권과 부도덕한 기업인들이 저지른 사고를 뒤치다꺼리하느라 국민은 등골이 휘었다. 피눈물 흘리면서 구조조정을 감내했고 장롱 속 금반지를 내놨다. IMF 외환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선진화된 금융 기법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방만한 경영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가 공적자금 수혈을 받고 회생한 금융회사들이 수천억~몇조 원씩의 순익을 낸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천문학적 돈은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던가.

십수 년 전 금융권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한 남자가 차를 몰다 신호 위반에 걸렸다. 경찰에게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인데…." 순간 경찰은 긴장했다. "저…. 어느 기관에 다니시는지." "금융기관요." "???"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회사들에 '기관'이라는 이름이 관행적으로 따라다녔던 것은 고객 위에 갑(甲)으로 군림하라는 것이 아니라, 공적 책임 의식을 가지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금융기관들은 공익보다 수익을 좇았고 '회사'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시쳇말로 돈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지 않는다. 특히나 남의 돈을 굴려서 돈을 버는 금융회사들은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과 같은 유전자가 태생적으로 내재할 수 있어 도덕적 해이와 탐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금융권에 대한 엄격하고 철두철미한 관리 감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이 안 되면 금융은 사회 안전망을 위협하는 '괴물'로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다.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뒤흔드는 '웩더독'(꼬리가 몸통을 흔듦) 시대에 우리는 그 냉혹한 교훈을 절감하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