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내 첫 씨족마을 문화사 '사촌마을 6백년' 펴낸 김광남 씨

안동 김씨 삶의 궤적 5년간 쫒아 생생히 복원

"세월이 흐르면서 고향마을의 정취가 점차 퇴색되는 게 안타까웠고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들이 모두 사라질 것 같아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沙村)마을이 고향인 김광남(70) 씨가 선조의 족적과 마을 역사를 잘 모르는 후손들을 위해 고향에 대한 글과 선조들의 유묵, 사진을 함께 곁들인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집성촌 사촌마을 6백년'을 펴냈다. 안동 김씨 중시조이자 고려 충렬공 김방경의 5세손인 입향조 김자첨이 1392년 터를 잡은 사촌마을은 조선시대에 46명의 과거 급제와 사마시 합격자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곳.

김 씨가 5년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454쪽의 이 책은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후손에게는 성씨의 정신적'문화적 근거와 실체를 제시한 문중 교범이면서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한 '씨족마을 문화사'란 평가를 받고 있다. 책은 서장에 안동 김씨의 뿌리와 중시조, 분파조 등 약 200년간의 고려시대 조상의 행적을 조명한 데 이어 문중 인물의 글과 한시, 묘갈명(묘비에 새겨진 죽은 사람의 행적과 인적 사항에 대한 글), 일제강점기 의병활동과 애국 계몽활동, 6'25전쟁 등 역사적 전환기마다 선조들이 대처한 삶의 고난을 소상히 밝혔다. 이어 만취당 등 마을의 유'무형 문화재와 마을 특유의 문화, 언어를 비롯해 사촌마을에서 타지로 옮겨간 도평의공파 후손마을 등을 다루고 있다. 부록엔 문중 주요인물 223명을 수록했고 18종의 도서에 기록된 인물을 발췌, 사촌 안동 김씨의 위상을 조명했다.

"공자는 '글을 보면 인품을 알 수 있다'고 했죠. 111명의 선조가 남긴 글을 읽으며 직접 대화를 하는 듯했고 묘갈명을 통해서는 제3자가 평가한 선조의 인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 씨가 책을 쓰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는 책 하단마다 빼곡한 1천31개의 각주와 철저한 고증이 말해준다. 한글 세대에 맞게 한자는 괄호 안에 처리해 중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이해를 도왔다.

"특히 한문이나 한시에 대한 해석을 고증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중시조가 쓴 선시에 나오는 삼단어칙(三段語則'불교에서 직관'총괄'응용을 일컬음. 즉 대상을 직접 파악하고 이를 활용한다는 의미)의 의미를 몰라 불국사 주지 스님이며 동화사 승가대학 등에 두루 문의해 겨우 뜻을 알아내기도 했습니다."

의성 구봉산 문소루에 있는 제영 중 초서한시의 글자 한 자를 해석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김 씨는 이 글자 한 자의 의미를 아는 데 8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그는 또 마을의 연례행사인 줄다리기 사진을 찍기 위해 원고 탈고 후 책이 출간되기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컴맹, 사진맹, 한자맹이던 제가 이 책을 쓰면서 컴퓨터와 사진도사(?)가 됐습니다. 돌이켜 보니 선조들의 글의 출처나 타 지역 지손 마을 12곳을 찾아 전국 출장을 80여 회나 갔었고 연락하느라 월 휴대전화비용이 평소 2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 씨는 지난해 10월 영남지역 64개 문중에 책을 배포한 후 많은 사람으로부터 격려와 찬사의 전화와 편지를 받았다. 선조들이 교류한 영남 유림 180여 명의 이름이 책에 적시돼 있어 각 문중에서 감사의 뜻을 전했기 때문이다.

"세상 인정이 급변하는 이 시대에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온고지신은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책을 쓰면서 선조들의 삶의 방식과 의리에 대해 보다 깊게 알게 됐으니까요."

김 씨는 안동사범학교 졸업 후 교직에 봉사했으며 상주교육청 교육장을 역임한 후 퇴직했다. 책은 그가 2005년 교육장 퇴임 후 구상해 2010년 탈고했다.

현재 책은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전국 지역대표도서관, 국학진흥원, 역사연구기관 등에 보내져 씨족사 연구 등에 활용되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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