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신록의 정원

또르르 옥구슬 구르듯 경쾌하고 맑은 꾀꼬리 노랫소리가 뒷산 솔숲에서 들려온다. 애기달맞이꽃이 은은한 향기를 날리며 분홍빛 수줍은 얼굴로 제일 먼저 아침인사를 한다.

여기 다사에 있는 나의 정원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닮은 하얀 마가렛, 날렵한 몸매가 일품이면서 원래는 습지를 좋아하지만 화단에서도 잘 자라는 노란 꽃창포, 정원 돌 틈 사이가 잘 어울려 5월을 대표하는 철쭉, 철쭉과 돌 틈 자리를 놓고 다투는 사철 채송화인 송엽국, 화려한 모습과 달콤한 향기로 유혹하지만 무서운 가시를 숨기고 있는 릴케의 빨간 장미 등이 화사한 맵시를 뽑내고 있다.

하지만 이 정원에는 초대받지 않은 식물들도 있으니 키가 장다리처럼 큰 소리쟁이와 망초, 꽃반지를 만드는 토끼풀, 자잘한 노랑꽃을 지천으로 깔아놓은 씀바귀, 보랏빛 꽃 타래가 탐스런 갈퀴덩굴, 바람에 너울거리는 참새귀리, 그외 방가지똥, 비수리, 곰보배추, 환삼덩굴, 지칭개 등은 정원에서 반갑잖은 식물들이다.

비수리, 곰보배추는 약초로서 가치가 있어 정원 가장자리로 옮겨 심고 나머지 야생초들은 뜯어서 토끼 먹이로 한다. 그런데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은 풀이 있으니 그 이름은 환삼덩굴. 뽑고 잠시 딴눈 팔고 나면 언제 자랐는지 질기기가 마치 고래 심줄이랄까. 다른 꽃조차 못 자라게 칭칭 감는다.

송홧가루 바람에 날리고 그 가루 안개로 피어오르는 오후! 먼 숲에서 뻐꾸기 소리 아득하게 들려오면 정원도 고즈넉함 속에 시간이 멈춘 듯 봄바람에 꽃잎만 흔들고 있다. 한편 꽃전시실 안쪽 창고에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서 새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고 마당의 닭장 속에는 노란 병아리가 엄마 따라 노니느라 분주하고 새로 사 넣은 까만 토끼는 연한 풀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어찌 이리 귀여운지.

며칠 전, 조금 늦었지만 고추 모는 정자 옆 텃밭에, 가지랑 토마토 조롱박과 수세미는 체험학습 오는 어린 친구들을 위해 닭장 옆에 심었다. 상추와 쑥갓, 호박들은 이미 텃밭에서 잘 크고 있으니 직접 농사지은 무공해 채소들이라 자랑하며 싱싱한 푸성귀로 행복한 식탁을 마련해 보려한다.

분주했던 하루도 편안하고 그윽한 휴식 속으로 빠져든다. 벌써 땅거미가 진다.

정원에 있는 꽃과 풀들은 내게 말을 건네며 소통하기도 하고 행복한 만남을 주선한다. 풀벌레와 새들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마음을 나누는 전령사가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꽃 가득한 신록의 정원도 있지만 철학의 나무들이 자라는 사유의 정원도 있다. 정신적 여백과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서 각자의 정원을 조금씩 갈고 다듬어 간다면 6월은 우리에게 또 다른 힘과 희망이 될 것이다.

김해숙(다사 꽃화훼단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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