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외 비즈니스의 100년' 해악 고발

보물섬/니컬러스 색슨 지음/이유영 옮김/ 부'키 펴냄

조세 피난처가 이 책의 소재다. 이른바 역외(域外) 비즈니스의 세계다. 저자는 조세 피난처(tax haven)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이 단어가 뜻하는 범위보다 훨씬 넓다고 말한다. 조세 피난처들이 단순히 '조세 회피'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 국가들의 법과 규정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조세 피난처를 '국가의 규정, 법, 규제를 우회할 수 있게 정치적으로 안정된 편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유치하는 곳'으로 해석한다. 즉 조세 피난처는 사법 권역의 바깥에 위치한 '역외'(offshore)의 공간이다.

저자는 역외 비즈니스를 벌이는 무대인 조세 피난처들은 지배 엘리트 계급과 범죄자에게 환상적인 도피처이자 거대 금융 이권 세력의 더할 나위 없는 친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조세 피난처를 중심으로 역외 체제의 지난 100년을 되짚어보면서 이 체제가 전 세계에 걸쳐 끼친 해악을 드러낸다.

이 책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이나 슈퍼리치들이 절세와 탈세, 거래 조작 등의 마법을 부리는 주 무대가 조세 피난처다. 역외 시장은 한때 마약과 도박 등 조직범죄와 관련된 자금이 은밀히 거래되는 시장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외 시장을 거치는 자금 운용 방법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다. 국내 자산 순위 30대 그룹도 해외 조세 피난처에 167개 법인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 피난처는 조세 정의의 왜곡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의 불평등한 부의 이전, 나아가 국제적으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역외 세계의 피난처들은 복수의 조세 피난처를 활용하며 자금을 끊임없이 포장'재포장하는 수법을 써서 출처를 감추며, 그 과정에서 자금의 정체를 숨기고 성격을 바꾸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역외 시장이 빠르게 번성함에 따라 은행은 우리 모두를 인질로 잡을 수 있을 만큼 몸집이 커졌다. 은행들은 저소득 국가들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수준을 크게 초과하는 대출을 해 준 뒤, 부채를 제때 상환하지 못하면 (IMF 등의 도움을 받아) 해당 국가 금융시장의 목을 조르겠다고 협박한다. IMF 외환위기를 뼈저리게 경험한 우리나라로서는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금융 위기가 발생해도 거대 은행들은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진면목을 보이며 살아남고 위기 탈출 비용은 일반 납세자들이 치르도록 만든다. 대규모의 공적자금이 은행 불사를 위해 투입된 사례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저자는 현재의 세계. 역외 비즈니스를 벌이는 무대인 조세 피난처들이 글로벌 경제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지배 엘리트 계급과 범죄자에게 환상적인 도피처이자 거대 금융 이권 세력의 더할 나위 없는 친구였던 조세 피난처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은 조세 피난처를 중심으로 한 역외 체제의 지난 100년을 되짚어 보면서 이 체제가 전 세계에 걸쳐 끼친 해악을 드러낸다. 이는 곧 현대 금융자본의 드러나지 않은 100년의 이야기다. 558쪽. 2만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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