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과 평화의 목소리가 절정에 이르던 1960년대의 끝자락, 자메이카에서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태동하고 있었다. 엘비스와 같은 시기, 서인도제도에서 유행하던 스카(Ska)와 록스테디(Rock Steady)를 원형으로 탄생한 이 장르는 레게(Reggae)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밥 말리(Bob Marley)를 통해 보편적인 장르로 등극하게 된다.
라스타파리아니즘(흑인의 정체성 회복과 이에 따른 아프리카 귀환운동의 일종)과 미국의 소울음악을 사상적 바탕으로 탄생된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밥 말리의 음악은 극단적인 가난에 시달리던 자메이카인들에게 종교와도 같은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자메이카인 특유의 낙천적인 성향을 다운비트에 담아 노래하면서 세계적인 주류 음악으로 주목받게 된다.
밥 말리는 밴드 웨일러스와 함께 1972년 메이저 레코드와 계약을 하면서 보다 공격적인 가사를 노래에 담는다. 앨범 내티드레드(Natty Dread)부터는 핍박받는 서인도제도 흑인들의 현실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흑인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정치적인 공격을 받기도 한다. 특히 1976년 자메이카 총선을 앞두고 인민국가당 지지 콘서트를 열면서 자신과 부인, 매니저까지 총격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국을 떠나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망명 기간 동안 밥 말리의 음악과 정치적인 메시지는 영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전하게 된다. 1960년대 히피들의 메시지가 용도 폐기된 시대, 밥 말리의 음악은 평화에 대한 대안적 목소리로 전해졌다. 이 시기 영국 음악에서는 레게 음악이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후 수많은 밴드들이 레게를 수용하게 된다.(UB40 같은 레게밴드뿐만 아니라 폴리스 같은 뉴웨이브밴드들도 레게를 자신들의 음악에 적극 수용한다.)
밥 말리의 시대정신이 가장 잘 나타난 일은 1978년 벌어진다. 정치적인 혼란으로 내전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 자메이카에서 벌어지자 망명생활을 접고 조국으로 돌아와 무대에 오른다. 당시 콘서트에서 밥 말리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인민국가당의 마이클 만리와 노동당의 에드워드 시가를 무대에 올려 화해의 손을 잡게 한다. 맞잡은 손의 진정성은 차치하고 이 사건은 20세기 평화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사건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1981년 밥 말리는 무르익어 가는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암치료를 거부하다 세상을 떠난다. 피서지에서 흥겹게 흐르는 레게 음악의 시작에는 평화를 꿈꾸고 행동한 위대한 영혼이 있었다는 정도는 알아두자. 또 레게머리라고 불리는 스타일은 담수가 부족해 해수에 머리를 감았던 자메이카 원주민들의 양식을 존중한 의미였음도 알아두자. 마침 밥 말리의 전기 영화 '말리'가 개봉되었으니 스크린에서 밥 말리를 만나보는 피서도 권해 본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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