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거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몇 년 전에 나온 광고카피다. 정보소통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필자가 보기에 이 한 줄의 카피는 급변하는 정보 환경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정보생태계를 살펴보자. 정보원(Source)은 유력 매체와 의견 선도자들을 통해 메시지를 공급한다. 그러면 권위자(Authority)들은 1차 콘텐츠들을 각자의 기준에 맞추어 필터링하고 때로는 새로운 시각을 덧붙여 주변에 알린다. 2단계 정보유통모델이다. 물론 소셜미디어 시대에 개인이건 매체이건 관련 분야 권위자들의 기능은 유지된다. 왜냐하면 권위자들은 전문 정보의 수집자인 동시에 지식과 통찰력을 결합하여 1차 콘텐츠를 보강하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 분석가인 베버(M. Weber)와 몬지(P. Monge)에 따르면, 정보원(S)에서 권위자(A)로 이어지는 기존의 모델은 한 단계 더 확장된다. 허브(Hub)가 확산 및 소통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이른바 S→A→H 모델이다. 복잡해지는 온라인 정보 환경에서 허브는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적절한 콘텐츠로 이동하도록 조언하거나 지시하는 감독자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물론 정보가 반대 방향인 H→A→S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보편적 사례는 아니다.
그렇다면, 권위자와 허브의 역할을 하는 이는 누구인가? 미국의 사례를 보면, 전문 저널리즘 기관들이 권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예컨대 보수지향인 폭스(Fox)뉴스와 중도진보적 성향의 엠에스엔비씨(MSNBC)는 신뢰받는 방송매체이다. 신문의 경우는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가 고급정보를 수집하고 여과한다. 이어서 UCC 공유사이트인 유튜브, 스마트폰의 각종 앱 등이 시민들에게 정보를 확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구글 및 야후에서 운영하는 뉴스포털, 허핑턴포스트를 비롯한 인터넷신문은 온라인 소통의 중핵이다.
지금은 정보원이 실시간으로 생산한 콘텐츠가 권위자를 통해서 걸러지고 디지털 미디어에서 대규모로 유통되는 초연결시대이다. 공공기관도 민간기업도 정보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 흐름대로 신속히 소통해야 하는 '위키노믹스'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지역은 아직 '올드 보이스 네트워크'(Old Boy's Network)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드 보이스 네트워크는 대구경북의 오랜 '우리가 남이가', '큰형님', '남존여비' 문화에 기초한 방식이다. 소수의 친밀한 가부장적 권위자에게만 의존하는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지역 기관들이 생산한 메시지가 원활히 소통될 수 없으며 민간경제도 살아나기 힘들다.
지역의 기관들은 소수의 중앙집중화된 권위자들, 즉 올드 보이스들에게 정보를 독점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관행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의 권위자들이 내외부로 흘리는 콘텐츠의 질과 양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선제로 선출된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교육감, 지방의원이 권위자로 존재하는 사실 자체가 문제 발생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초점은 이들이 주어진 권위 덕택에 접근한 실질적 정보의 소통 방식이 SAH 모델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서울에 호우경보가 내려졌을 때 박원순 서울시장이 트위터로 시민들과 피해 지역의 정보를 공유하며 위로한 모습은 딴 나라 먼 얘기일 뿐이다.
SAH 네트워크의 효율적 작동을 위해서 좀 더 지역적이고 틈새 지향적 정보원(S), 권위자(A), 확산자(H)의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 '하이퍼로컬'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직능별 특화된 정보원 매뉴얼을 제작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정보 생산과 활용을 융'복합적으로 수행하는 프로듀저(produser) 훈련 및 교육 정책도 필요하다. 신(新)확산자인 프로듀저 양성을 서둘러 시행했다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클래스팅' 앱이 우리 지역에서 먼저 개발되었을 것이다. SAH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다 대 다'(多對多)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여 정보와 콘텐츠가 개울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따라서 지역 공론장의 허약한 체질을 개선, S→A→H의 혈(穴)을 자극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박한우/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사이버감성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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