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주폭스러운 일본, 우츠쿠시이 일본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 따돌림이나 주폭(酒暴)이 두려움의 대상인 것은 술 취한 자들이 휘두르는 주먹이나 해코지 때문은 아니다. 하루가 멀다 않고 되풀이되는 황당한 시비와 트집이 성가시고 지긋지긋해서다. 계속 트집 잡고 괴롭히는 꼴이 아예 고문 수준이다. 나아질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질이다. 결국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개과천선은 '동물농장'에나 나오는 일이 되고 '구제 불능'이라는 괴물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일본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틈만 나면 약탈과 침략을 반복한 것도 모자라 끊임없이 시빗거리를 만드는 이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노다 총리가 무례하게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항의 서한을 보내고 독도에 대한 유효 지배를 다짐하며 '불퇴전의 결의'를 외치질 않나, 정치인들은 앞다퉈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집권하면 과거 역대 정권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한 3대 담화를 되돌려 놓겠다"고 한다. 그는 2006년 '우츠쿠시이(아름다운) 일본'을 정권 슬로건으로 내건 인물이다. 그런 그가 아름답기는커녕 '치졸하고 추한 일본'을 만천하에 드러내 놓고 있다.

전'현직 총리와 각료들이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으니 여기저기서 "그래, 증거는 없다. 위안부는 날조다"며 국민도 정신 나간 소리를 해댄다. 진정성 있는 사죄 한 번 없이 알량한 담화 몇 번 내놓고는 그마저도 증거가 없다니 무슨 헛소리인가. 자국 정부가 2년 가까이 엄밀히 조사해 발표한 일을 잉크도 마르기 전에 엉터리 담화라고 부인하는 꼴이 안쓰러울 정도다.

북'일 대화가 단절된 지 4년 만에 재개됐다. 겐바 일본 외상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흥미로운 점은 NHK방송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납치 문제를 주변에 적극 홍보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일본 국민 39.6%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민당 고이즈미 총리 시절인 2004, 2005년 무렵이다. NHK가 납치 문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김혜경 케이스'로 널리 알려진 요코다 메구미 납치 사건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피랍자 부모들이 동분서주하는 내용이다. 당시 일본 내 납치 문제에 대한 여론은 말 그대로 백지이자 얼음이었다. 자민당은 선거에 도움이 안 되는 이슈라며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여론을 환기시키는 요코다 부부를 시민들은 벌레 보듯 했다. 손을 모질게 뿌리치거나 전단을 패대기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문제로 공연히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투인데 그 냉랭함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다 고이즈미 총리가 김정일을 만나 담판을 벌이고 일부 피랍자들이 귀환하자 분위기는 돌변했다. 최근에는 요코다 부부가 나서는 초청 강연회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일제는 수십만 조선 여성 등을 납치'유괴해 위안부로 끌고 갔다. 이 일에 관여한 일본 군인과 정부 관리, 피해자 등의 증언과 문서가 세계 도처에 차고 넘친다. 이런데도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일본인들은 생떼를 쓴다. 피해자에게는 유감이지만 고작 수십 명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집요할 정도로 물고 늘어지면서 수십만 꽃다운 처녀들을 성 노예로 만든 잔혹한 역사는 그들 눈에는 왜 조금도 보이지 않을까.

'아무리 많은 증거가 있어도 증거가 아니라고 말하면 그뿐'이라는 일본 특유의 그릇된 사고 때문이다. 불리하면 감추고 증거를 들이대면 얼버무리는 야비한 습성, 없는 사실도 날조해 짜맞추고 엄연한 사실은 아닌 것으로 둔갑시키니 위안부 문제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언론인 김진현 씨는 한 세미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일본으로 하여금 과거 식민지 시절에 당한 고통을 그대로 경험시키는 게 최상의 방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계속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고 바른 역사 의식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반도는 일본 열도를 향해 돌출한 흉기"라고 서술하는 후소샤 역사 교과서 따위가 존재하는 한 일본은 구제 불능이다. 역사 의식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극우 세력에 정치인들이 편승하고 국민들이 벌떼처럼 동조한다면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주폭스러운 일본'과 '우츠쿠시이 일본', 무엇을 선택할지는 일본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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