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두더지 때려잡기

오락실 앞에서 학생들의 낄낄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치지도 않고 튀어 오르는 두더지를 망치로 내려치고 있다. 벗겨진 머리, 뭉그러진 얼굴로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내가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을 때는 두더지를 간첩잡기로 비유했었다. 지치지도 않고 튀어 오르는 두더지가 흡사 땅속에 숨어 있다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내미는 간첩을 닮았기 때문이다. 간첩의 얼굴과 모양을 보지는 못했지만, 두더지 같이 혐오스런 얼굴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잡고 솎아내도 북에서 자꾸만 내려오는 간첩은, 흡사 망치가 쉬는 사이에 튀어 오르는 두더지의 습성을 영락없이 닮았다.

며칠 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친정아버지의 땅이 발견되었다. 물론 발견된 땅이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땅값이 워낙 비싼 곳이라 남겨진 식구들 모두 숨을 죽였다. 얼굴들을 보면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은 표정들이었지만, 속으로는 자기 앞으로 배당될 땅값을 계산하느라 바쁜 것 같았다. 가면 마스크 속에 숨어 아무도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형제 중에 제일 여유 있는 큰 동생이 입을 열었다. 힘들게 살고 있는 막내에게 돈을 몰아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데, 모두가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앞을 다투어 찬성했다.

나도 큰 소리로 더 많은 찬성의 말을 보탰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별안간 돈이 쓰일 곳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만일 그 돈이 있었더라면….'

집 외벽의 타일이 낡아서 이곳저곳 이빨 빠진 것처럼 보이는 주택을, 헌 건물에 무슨 돈을 들이겠느냐며 애써 외면하던 일이 떠올랐다. 십 년이 넘도록 타고 다니는 소형차가 기름 값이 비싼 요즘은 너무 경제적이라며, 아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변명을 늘어놓던 일도 생각났다. 대구 정도의 추위에 무슨 밍크코트냐며, 스포츠센터까지 떨치고 다니는 다른 여자들을 시샘하며 비웃던 내가 더욱 초라해 보인다.

아직도 오락실 앞 아이들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있다. 사막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진 뭉칫돈의 유혹은 누르면 누를수록, 내가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강력한 크기로 나에게 달려든다. 암흑을 틈타 몸을 감추고 내려오는 검은 간첩처럼, 완전히 잠가 버리지 못한 내 허약한 마음속으로 점령군처럼 막무가내로 침범해 온다.

두더지는 어떻게 튀어 오르는 것일까.

두더지가 얼굴을 내밀 때마다 커다란 압력이 머리위로 가해지고, 주저앉아야 할 두더지는 탄력을 받아 누르기 전보다 더 많이 튀어 오른다. 세게 누르면 누를수록 더 높이 튀어 오르는 원리가, 흡사 인간들의 얄팍한 마음을 비웃고 있는 것 같다.

고윤자 약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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