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우리 시대의 소설가' 이문열

"감정만 격화시키는 사회 문화… 그래서 난 구경만 하기로 작심"

'우리 시대의 소설가' 이문열.

최근작 '리투아니아 여인'으로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이문열을 만났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지금까지 젊은 작가들에게 주어지던 상을 받게 돼서 기회를 뺏은 것 같아 걱정스럽다"면서도 "정색을 하고 쓴 역작도 아니고 부드럽게 쓴 소품 같은 작품인데 이런 큰 상을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도 내가 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되는 일"이라며 기뻐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문단에서 '묵살의 카르텔'에 걸려 있었다고 고백하는 이문열. 글을 내놓는 족족 문학평론가들이 아니라 정치평론가(?)들이 '이문열이 또 정치적 이야기를 썼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비평이 아니라 '욕설'로 받아들였던 그는 모처럼 문학상 수상에 '정치적 굴레'에서 잠시 빠져나온 듯 홀가분해 보였다.

대학교수들과 문인들이 대선 후보들에게 줄을 서서 멘토 노릇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 누구나 어디서나 정치 이야기를 하는 정치 과잉의 시대.

그러나 야권 후보나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면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치부되지만 새누리당이나 우파 진영의 목소리에 동조하면 정치한다고 비난받는 것이 다반사인 '왜곡된' 참여 정치의 시대다.

그는 올 초 한 월간지에 김유신 장군을 소재로 한 소설 '대왕, 떠나시다'를 연재하다가 중단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소재인데다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아 흥이 나지 않아' 스스로 연재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 내 그의 서재에서 진행된 3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화제는 80% 이상이 정치였다. '소설가 이문열'이 아니라 보수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적 인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 엄청나게 불편해하면서도 그는 현재의 대선 구도와 야권 후보 단일화, 안철수 현상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 않고 털어놓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한 발 뒤로 물러서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씩씩했고 강해 보였다.

사실 그의 정치적 활동은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둔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참여한 일밖에 없다. 연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특정 후보와 진영을 위해 종횡무진하고 있는 소설가 공지영이나 조국 서울대 교수의 활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정치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공심위에 참여해서 딱 75일간 한시적으로 활동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문인 중에서 정치를 제일 많이 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황석영이 후보 단일화 촉구 서명을 한 것은 정치 아닌가. 지금도 대놓고 줄 서고 멘토 노릇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문인이) 보수진영을 도우면 정치고 진보 진영에 줄을 서면 '행동하는 양심'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정치와 이문열

-연초에 안철수 후보에 대해 '아바타'라고 한 적이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어떻게 보는가.

▶단일화는 1년 전부터 기획된 것 아닌가. (단일화가) 안 되면 이상하다. 구경꾼으로서 '관전 포인트'를 얘기한다면 세 번째인 후보 단일화에 또 속아 넘어갈 것인가다. 노무현-정몽준과 똑같은 패턴이다. 이를 유권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굉장히 궁금하다. 다시 '늑대가 왔어요'라고 해도 우리 국민들이 뛰쳐나갈 것인지 결과를 보는 일은 재미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대군을 거느린 후보인데 본인 외의 장수나 졸개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단기필마인 것 같아 답답한 기분이 든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맞는 뭐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하는 수 없는 것 아니냐.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는 연초에 '언론이 키우는 아바타'라고 정확하고 필요한 지적을 했다. 그때는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아바타라고 말했는데 그 뒤에는 단일화 기획세력이 있다. 안 후보는 기성 정치권의 부패에 대해 실망한 국민의 열망에 의해 불려나왔다고 하는데 말이 되지 않는다.

-기획세력은 누구인가 예전 홍위병들과 맥락이 닿아 있는가.

▶기획세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지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세력의 일부는 '원탁회의'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도 포함될 수 있다. 안 후보는 국민 여망에 부응해서 튀어나온 후보는 아니다. (안 후보 스스로)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다고 해서 나왔는데 그중에 한 세력과 단일화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다만 지금은 2002년 때와 달리 누가 불쏘시개이고 누가 진짜인지 분간이 되지는 않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쪽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은 없는가.

(사실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영입제의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자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며 일축한 바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새누리당의 핵심인사들이 다양한 경로로 지원을 요청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돼 있다. 이미 여러 번 (정치적) 말을 해왔다. 그동안 충분히 내 성향을 보여줬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새롭지 않다. (나와 같은 역할을 찾는다면) 새로운 사람을 구해야 한다.

-'정치를 할 수도 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정치할 기회가 와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면 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나 이번 삶은 고약해서 이미 작가가 돼버렸고 그 삶을 바꿀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번 삶은 아니다. 다음 삶에서는 모르겠다.(웃음)

-여러 가지 활동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 친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안 그래도 인기 없는 대통령인데 박절하게 대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인데…, 얘기하자면 굉장히 단순하다. 이 대통령 선거 때 도와준 일이 없다. 그때 미국에 가 있었다. 2010년 여름휴가 때였는데 이 대통령 주변에 있던 지인이 (대통령이) 휴가를 가는데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남 휴가 가는데 왜 내가 가느냐'며 거절했더니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와서 다른 사람 다 왔다 갔으니 가서 같이 낚시나 하고 오자고 해서 두 번이나 거절하기 어려워 가서 하루 자고 왔다. 그것밖에 없다.

독도에 간 것도 처음에 일정 때문에 못 간다고 했더니 당일치기라며 다시 연락이 와서 따란 간 것뿐이다.

-이번 대선이 지나면 적대적인 우리 사회 문화가 바뀌지 않을까.

▶어려울 것 같다. 새로운 '광장'의 수준하고 관계가 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예전의 '광장'처럼 세련되지도 정화되지도 못하고 감정만 격화시키기 때문이다. 인터넷 언론이라는 것은 메아리와 확성기를 확대하고 있다. 한 사람인지 열 사람이 떠드는지 알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저 구경만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답답하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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