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에겐 얼마만큼의 책이 필요할까, 두보의 시에서처럼 다섯 수레 분량만큼 읽어야 할까.
지인들과 한 해를 갈무리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구상했다. 같은 책을 함께 읽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제안한 책들을 모아서 '하버드 클래식'을 벤치마킹해 우리들의 새해 독서 목록을 만들었다.
알려진 대로 '하버드 클래식'은 하버드대학의 찰스 윌리엄 엘리엇이 총장직에서 퇴직하면서 만든 별칭 '5피트 책꽂이'로 불리는 인문학 서재이다. 그는 재임 중에도 "5피트 책꽂이면 몇 년 과정의 일반교양 교육을 대체할 만한 책을 충분히 담을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퇴임하면서 하버드대학 교수들의 도움으로 '5피트 책꽂이'를 편집했다. 그의 말처럼 모든 국민이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읽고 나면 지적 인간이 될 수 있는 컬렉션인 '하버드 클래식'은 인문학의 가이드 북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인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내면은 보다 더 '인간적인', 점점 더 '본질적인' 것을 향해 회귀하는 것 같다. 독서 취향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근래에 새로운 컨셉트로 접근한 고전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것도 이러한 독서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고전의 방대한 분량에서 건져낸 보석 같은 구슬로 책을 엮고, 일상생활 가까이에서 지혜가 담긴 글귀를 만날 수 있도록 탁상 달력을 함께 만들었다. 고전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고전 속에는 천 년의 사람, 백 년의 사람이 전하는 천 년의 진리, 백 년의 향기가 존재한다. 이 진리의 향기가 어떤 교훈보다도 먼저 동질감을 주는 것 같다.
고전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풋풋하던 시절, 나의 어설픈 논어의 추억 한 자락을 떠올리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친구들과 우리 우정 변치 말자며 반지를 맞추러 간 적이 있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우리가 반지 안에 새겨넣고 싶었던 이 글귀는 반 돈쭝 반지에 어림없다는 금은방 아저씨의 말에 '不亦樂乎'로, 다시 '樂乎아'로 재단되었는데 정작 완성된 반지에는 한글 '락호아'가 새겨져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가 '띵호아'로 보인다는 이도 있지만 지금도 나의 약지에서 반짝거리는 반지를 보면 그 글귀를 정해놓고 서로에게 반가운 벗이 되고자 했던 마음에 스스로 뿌듯해했던 우리가 떠오르곤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되 누구도 읽지 않는 책, 그것이 고전"이라고 누군가는 정의했다. 새해에는 고전에 제대로 집중해 볼 생각이다. 나는 지금 한 해의 끝자락을 보내면서 만든 새해 독서 목록의 첫 권의 향기 맡으며 조금씩 독서삼매에 빠져들고 있다.
출판편집디자인회사 홍익포럼 대표 나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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