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두고간 휴대폰 팔면 17만원"…유혹 빠진 택시기사

종일 운전해 2만원 버는데…택시기사·매입자 10명 검거

경력 3년차 택시기사 A(31) 씨는 하루 종일 수백㎞를 운행해도 사납금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2만~3만원에 불과했다. 일부 동료가 '습득한 스마트폰을 되팔면 10만원 이상 수입이 생긴다'며 A씨를 부추겼지만 못 들은 척했다. 대구 수성구에서 내린 승객에게 휴대전화를 전달하기 위해 성서에서 '빈차' 상태로 20분을 이동해 휴대전화를 돌려주기도 했지만 A씨에게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례비는커녕 빈차로 주행하는 동안 미터 요금조차 받지 못했다. 운행하는 동안 소진한 가스비도 건지지 못하자 A씨는 이후 생각을 바꿨다. 승객이 두고 내린 스마트폰을 매입한다는 전단을 보고 10만원에 팔았다. 쉽게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욕심이 커졌다.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범죄에 뛰어든 A씨는 두 달 만에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A씨는 "이렇게 큰 범죄가 되는 줄 몰랐다"고 후회했다.

택시기사 B(35) 씨도 처음엔 승객이 두고 내린 휴대전화를 곧잘 돌려줬다. 휴대전화를 되찾은 몇몇 손님은 '돌려줘서 고맙다'며 택시 요금과 사례비를 주기도 해 B씨는 큰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최근 휴대전화를 돌려준 승객 중에는 '보험에 들어놨으니 사례비까지 줘가면서 돌려받을 이유가 없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해놓고 사례금을 요구하는 게 뻔뻔하다'면서 B씨의 선의를 헛수고로 만드는 경우가 잦아졌다. 동료 택시기사 중에도 "스마트폰 한 대 주운 날은 대박 나는 날"이라며 짭짤한 수입을 챙기는 이들이 생겨났다. B씨는 "기차역이나 옛 한일극장 근처 길가에 대기하고 있으면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다가와 '혹시 휴대폰 주운 거 가지고 있냐'며 은밀하게 묻거나 신용카드 크기의 전단지를 뿌리면서 '휴대폰 고가매입'을 외치고 다닌다"며 " 큰돈을 쥔다는 욕심에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에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에서 스마트폰을 놓고 내리면 되찾지 못하는 이유가 경기침체 등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일부 택시기사들이 장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하루 10만원이 넘는 사납금을 채우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택시에 두고 내린 스마트폰을 고가에 팔아넘기거나 사들인 택시기사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대구 달서경찰서는 8일 만취 승객이 두고 간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고 습득하거나 이 같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던 택시기사들로부터 휴대전화를 매입한 혐의로 C(45) 씨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매입한 장물을 중국으로 밀반출한 대구지역 총책 D(40)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대구지역 택시기사를 상대로 '중고 휴대전화 고가 매입'이라는 내용의 광고물을 돌린 뒤 연락해오는 기사들에게 스마트폰 596대(시가 6억여원)를 사들여 중국으로 밀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 택시기사는 승객이 두고 내린 스마트폰을 보관하고 있다가 광고지를 뿌린 장물업자에게 1대당 8만~25만원 등 평균 17만원 정도를 받고 판매했다. 특히 만취상태의 승객은 휴대전화를 두고 내리는 경우가 많고 분실 사실을 늦게 인지해 범행이 용이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택시기사 중 일부가 한순간 유혹을 못 이겨 범행을 저지른 것이 들통났다"라며 "승객들도 택시에서 내릴 때 두고 내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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