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달콤한 인생

한 사나이가 우물 옆 등나무 덩쿨에 매달려 있다. 우물 밑에서 독사와 독룡이 독기를 내뿜고 있고 위에는 미친 코끼리가 발을 둥둥 굴렀다. 으르렁거리는 짐승과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피하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매달려 있는 등나무 줄기를 갉기 시작했다. 그때 몇 마리의 꿀벌이 집을 짓느라고 움직이는데 한 방울씩 떨어지는 꿀의 단맛에 취해 그는 모든 위험을 잊고 도취돼 있다. 흰쥐와 검은 쥐는 시간을 의미하고, 이 위험한 달콤한 인생을 스페인어로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라고 한다.

라 돌체 비타! 어쩌면 이것이 우리 인생일 수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호스피스 병동은 이 마주하기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호스피스 의사가 된 후에도 여전히 그 벌꿀에 식욕을 느낀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라고 한 카프카의 말처럼 오히려 더 왕성해졌다. "우리가 왜 벌써 죽음을 알아야 합니까?" 말기 암환자가 입원 한 대체요법하는 모의원에 가서 호스피스 이야기를 하려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등 뒤에 죽음이 와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싫어했다. 진취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한껏 재능을 발휘해야 할 젊은이들에게는 결코 알리고 싶지 않은 주제라고 터부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은 죽음이란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끌어내는 것은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당연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사람들은 오히려 내게 죽음에만 너무 빠져들지 말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준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내가 삼킨 죽음은 나를 시원하게 바꾸었다. 전업주부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책 읽는 여자에서 책 쓰는 여자로 변화시켰다. 그만큼 이 끔찍한 주제는 내게 있어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로 들려왔다. 암을 이기지 못한 환자들이 들려주는 삶의 끝자락 이야기가 실패한 인생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혼한 전 남편과 수십 년 외면하고 살다가 임종실에서 뿔뿔이 떨어져 지내던 가족을 모이게 하는 죽음의 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확실히 보았다.

"어쩌죠. 순애님만 안 아프시면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인데. 어렵게 공부한 아들도 이제 취직해서 예쁜 여자 친구도 생겼고." "그러게 말예요. 할 수 없죠. 생명이 우리 것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차분하게 말하는 반백의 깡마른 그녀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죽음은 더 이상 일상생활에서 꾸겨서 깊숙이 넣어버려야 할 무거운 이야기도 그저 스쳐지나가야 하는 가벼운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마지막을 통해서 지금이 달라진다면 죽음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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