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른 폭설로 몸값이 한껏 높아진 염화칼슘. 하지만, 지나친 사용 탓에 환경이 오염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일부 국가에서는 제설제 사용을 금지하는 등 자구책을 찾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친환경 제설제 마련 등 체계적인 제설 대책이 없는 상태다.
◆제설제 구하기 전쟁, '현재 진행 중'
폭설이 쏟아질 때마다 제설제로 각광받는 염화칼슘. 물과 만나면 발열 반응을 일으키며 눈을 녹이는 역할을 한다. 올해 특히 많은 눈이 내리면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마다 제설작업용 염화칼슘 구하기 전쟁을 벌였다. 올겨울 유난히 심각하긴 했지만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염화칼슘을 생산하는 업체는 OCI 단 한 곳뿐이다. 나머지 내수용 염화칼슘은 중국에서 수입해 오고 있다.
하지만, 언제 폭설이 내릴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염화칼슘을 대량 수입하는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다. 염화칼슘 판매업체 한 관계자는 "내년에도 올해처럼 눈이 많이 내릴지 알 수 없는데 염화칼슘을 수입했다가 나중에 팔리지 않으면 손해가 크다. 이번처럼 정확한 수요가 있을 때만 OCI 등을 통해서 염화칼슘을 사 판매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눈만 내리면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진다. 대구 북구 침산동의 한 화공약품 판매업체에는 최근 염화칼슘을 사러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기도 했다. 제설에 사용되는 공업용 염화칼슘이 바닥나자 그보다 비싼 식용 염화칼슘까지 죄다 사가는 등 경쟁이 치열했다는 것.
업체 관계자는 "최근 눈이 많이 왔을 때 공장 앞마당에 100여 명이 몰려와 염화칼슘을 사가려고 줄을 섰다. 소방서와 학교, 지자체 등 공공기관은 물론 개인 구매자들도 찾아와 염화칼슘이 거의 동이 났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청은 지난해 9월 조달청을 통해 염화칼슘을 구매하려 했지만, 판매 업체에 연락할 때마다 번번이 "재고가 없다"며 거절당했다.
최근 길거리 제설함에 비치된 염화칼슘을 한꺼번에 쓸어가는 '얌체족'도 극성이다. 대구 수성구청은 제설함 550개를 설치해 놓고 주민 편의를 위해 무료로 염화칼슘을 채워넣고 있다. 하지만, 염화칼슘을 채워넣고 돌아서기 무섭게 빼가는 '도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성구청 건설과 남철호 주무관은 "지금은 눈도 내리지 않는데 제설함이 텅텅 비어 있다. 한 주민이 '어떤 사람이 검은 승용차를 타고 와 염화칼슘을 다 가져간다'며 신고하기도 하지만 주민 양심에 맡겨야 하는 문제라서 일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 환경 파괴하는 염화칼슘
도심 곳곳에 뿌려진 염화칼슘이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주목받고 있다. 염소와 칼슘이 결합한 염화칼슘은 이후 분해되면서 염소가 토양이나 수질에 스며들어 산성화시키기 때문.
영남대 환경공학과 이순화 교수는 "염화칼슘에 있는 염소 농도가 짙어지면 토양이 오염된다. 나무에 바닷물을 계속 붓는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며 "염소가 물속에 들어가 오염돼 버리면 이를 정화하는 데 비용도 많이 들고 처리도 잘되지 않는다. 식수원 근처에 있는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릴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염화칼슘이 아스팔트 도로 위에 구멍인 '포트홀'(pot hole)을 만들기도 한다.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에 파고들어 구멍을 만들어 운전자 안전을 위협하는 것. 대구 북구 학정동과 동구 도학동 등 주요 도로 곳곳의 아스팔트에 최근 균열이 생겨 제법 큰 구멍이 생기기도 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염화칼슘이 실제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래의 환경'보다는 '현재의 응급조치'가 더 선호되는 것이다.
◆친환경 제설제가 있긴 한데
조달청은 올해부터 염화칼슘을 조달 품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염화칼슘과 소금 등이 시민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점을 고려해 환경부 기준 환경표시인증을 받은 친환경 제설제만 지자체에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
조달청 관계자는 "현재 친환경 제설제 국내 생산 규모가 연간 53t 정도며 계약 물량은 수요에 따라 더 증량할 수 있기 때문에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지자체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대구 북구청 건설과 관계자도 "친환경 제설제를 사고 싶어도 조달청에 물량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염화칼슘을 파는 각 업체에 개별 연락을 해서 재고를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일부 지자체는 친환경 제설제를 사용해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팔당수질개선본부는 경기도 여주와 이천, 광주 등 수도권 주민 2천500만 명의 식수원인 팔당호 수질 보호를 위해 인근 7개 시'군에 친환경 제설제 사용을 권고했다. 팔당호 주변 국도와 지방도를 관리하는 의정부국도관리사무소는 친환경 제설제 350t을 확보해 사용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 염화마그네슘이 주성분인 친환경 제설제는 염화칼슘에 비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하지만, 비용이 염화칼슘보다 3배가량 비싸다.
대구시 건설과 관계자는 "제설제를 구입할 수 있는 재난관리기금이 한정돼 있다 보니 부족한 예산으로 친환경 제설제만 100% 구입할 경우 부담이 크다"며 "그렇다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염화칼슘을 무한정 뿌릴 수도 없어서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고 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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