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김지하와 독재자

중국 전국시대 위(衛)나라에 군주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라는 미동(美童)이 있었다. 위나라 법은 신하나 백성이 군주의 말을 타면 발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가했다. 어느 날 미자하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군주의 수레를 타고 궁궐을 빠져나가 병문안했다. 이 사실을 안 군주는 "착하구나.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에 발꿈치가 잘리는 형벌을 감수하다니"라며 용서했다.

미자하가 군주와 함께 과수원에 가서 복숭아를 따 먹었다. 맛이 하도 좋아서 미자하는 자신이 먹던 것을 군주에게 주었다. 군주는 "미자하가 나를 끔찍이 위하는구나. 이토록 맛있는 복숭아를, 제 입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나에게 주다니"라며 칭찬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얼굴에서 고운 빛이 사라졌다. 그 무렵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다. 군주는 미자하를 벌하며 말했다. "미자하는 원래 그런 놈이다. 예전에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탔고, 먹다가 남은 복숭아를 내게 먹으라고 하던 놈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에나 다를 바 없었는데 처음에는 칭찬을, 나중에는 벌을 받았다. 사람 마음이 변화무쌍하고, 세월과 사정에 따라 애증이 교차하며, 신하의 부침이 오직 권력자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허망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김지하의 시 '오적'을 권력을 향해 일갈하는 용기로, '타는 목마름으로'를 민주주의를 향한 절규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근래에 사람들은 김지하의 시에서 은유의 따뜻함이 사라졌다고, 그의 글에는 노선도, 논리도, 연민도, 분노도 없다고, 약자에 대한 존중도 없다고 말한다. 노망이 들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지하의 시는 원래 은유적이 아니라 직설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김지하의 말과 글에는 논리와 연민과 분노가 가득하다. 정의와 생명을 지키려는 노선에도 변화가 없다. 약자에 대한 존중이 없다니? 김지하가 근래에 비판한 사람들이 약자인가?

마음에서 김지하를 지운다는 사람들은 실은 '그가 우리 편을 공격하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내 편일 때는 좋았다가, 내 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싫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모습을 두고 평가를 달리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며, 사실 왜곡이다. 김지하가 제정신이 아니라니? 그런 식의 외면은 내 귀가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독재자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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