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태흥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김민기 곡, 양희은 노래 <금관의 예수>

이 선생님, 지금도 그렇지만 전 어릴 적, 유난히 의문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무엇을 하나라도 진득하게 끌어안고 있지 못해서 학교에서 집으로 보내는 통신문에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함'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다니던 교회에서는 늘 믿음이 부족해서 위험하고 어리석은 양이었습니다.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우리의 형상을 보고 인간을 창조'라는 구절을 두고 신에 의문을 가진 죄(?)로 할머니께 호된 꾸지람을 들었고 할머니가 목사님께 사죄를 하는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전 교회에 나가는 것이 늘 가시방석과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외가에 얹혀사는 불편함에 저를 달래곤 하셨지만 오히려 어린 학생의 눈에는 거대한 교회를 만들려는 목사님과 가난한 사람들의 방세를 올려 교회에 건축 헌금을 내는 할머니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예수는 아무 데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성탄 연극을 준비하면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못을 판 상인이 원죄로 고통스러워한다는 내용에 문제제기를 한 죄(?)로 전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쉰의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전 지금도 그 못을 만든 상인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불경스러운 일이 될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죄는 못을 만들게 한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니면 그것을 잘못 해석한 목회자들의 몫이겠지요. 대학을 들어와 한 노래를 들었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겨울 한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 모를 어둠 못 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 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못 견디겠네 차디찬 이 세상 더는 못 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우리 구원하실 그분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김민기가 곡을 쓰고 양희은이 노래한 '금관의 예수'는 비록 금지곡이었지만 오랜 세월 우리들의 애창곡이었지요. 얼마 전,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았습니다. "대지보다 넓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다이다. 바다보다 넓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늘이다. 하늘보다 넓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용서를 받고 그 사랑에 감복해 읊은 시는 영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설이 다가옵니다. 아직도 노랫말처럼 힘든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쓰신 가시 면류관이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증표라는 믿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그의 피 흘림을 잊고 있는 이들을 의심하는 것이지요.

이 선생님, 사람들에게 어쩌면 제가 갖고 있는 이런 생각이 행여 종교적 편견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정치적 편견이라고 치부될지도 모릅니다. 영화 내내, 민중 혁명을 위해 죽어가는 청년들을 싸늘하게 외면하며 문을 닫던 파리 시민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겠지요. 대선이 끝나고 새해를 맞습니다. 절반의 승리와 패배가 갈등과 반목을 계속 부추기게 된다면 금관을 쓴 예수의 통곡은 그치지 않겠지요. 유난히 매서운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가 되고 바로 그것이 경제 민주화라는 시대적 화두를 푸는 것이라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요.

전태흥 미래티앤씨 대표사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