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터고' 등의 고교 다양화와 공교육 중심의 글로벌 인재 육성, 입학사정관제 도입과 부실 대학 퇴출 등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정책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이 정부가 추진해 온 교육 개혁의 일환이었다.
이 정부가 교육과 과학기술의 융합 성과를 극대화하면서 교육 거품을 해소하고 교육과학기술 발전에 적잖은 투자를 이끌어낸 것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진학률이 크게 감소하면서 마이스터고 등 특성화고에 대한 기대가 늘어나고 있고 고졸 취업이 증가하는 '신 고졸시대'도 열렸다. 사교육비 증가세는 2010년 이후 감소하고 있다.
이 같은 'MB표' 교육 개혁은 사실상 이 정부 출범에 앞서 교육과학기술정책을 설계하고 이를 전면에서 이끌고 온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52)의 작품이다.
그는 이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위 간사를 맡아 교육과 과학기술을 융합시킨 교육과학기술부 탄생을 주도했고 교육과학기술정책을 설계한 뒤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과 교육과학기술부 제 1차관에 이어 2010년 8월 장관으로 승진, 지금까지 2년 4개월째 교육과학기술정책의 수장 역할을 도맡았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교육 관련 공약을 만들고 인수위에서 교육문화분과위 간사를 했고 이어 청와대에 가서 수석까지 했으니까 설계부터 시공'감리까지 다 (내가)했다고 할 수 있다"며 "책임도 막중했고 보람도 있었다. 많은 책임이 저한테 있고 책임에 대해서는 달게 지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해 교육과학기술부를 5년 만에 과학기술 분야를 떼어내 교육부로 되돌려놓기로 함에 따라 교육과 과학기술의 융합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됐다.
이 장관이 올 초 신년사를 통해 "교육과 과학기술은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함께 해야 할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지난 5년간 추진해 온 교육과학기술 정책이 현장에서 결실을 보고 더 큰 성과가 이루어지도록 차기 정부에서 더욱 노력해주실 것"을 희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장관이 청와대 수석과 차관 장관직을 이어가면서 5년 내내 교육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한 것은 역대정권에서도 전무후무하다. 이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책임진 장수 장관이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두 번째 장수 장관이다.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이 10개월이었다고 하더라. 박근혜 당선인도 '책임장관' 말씀하셨고 선진국에서도 정부와 함께 가는 장관을 임명하고 있다. 장관을 오래하게 하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특히 교육정책이나 과학기술정책 등 일관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장관이 오랫동안 맡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관직을 오래 하고 있어야 역량 있는 직원들을 발굴할 수 있고 저도 (교과부에서)여성국장을 5명이나 발탁했다. 장관을 오래 해야 직원들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부처의 역량도 강화된다. 선진국에서는 교육장관을 잘 바꾸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다. 이 장관이 추진해 온 교육정책을 요약한다면?
"교육에 두텁게 낀 거품을 걷어내려고 했다, 고학력, 입시 위주의 사교육 거품이다. 그것은 또한 교육의 본질을 가리는 거품들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학력 위주, 대학입시 위주로 가면서 발생한 여러 부작용을 많이 걷어냈다고 생각한다.
대학 진학률도 낮아졌고 기대한 만큼은 아니지만, 사교육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률도 3년 연속으로 낮아지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입시 교육도 입학사정관제도 도입을 통해 창의인성교육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무엇인가?
"국민께서 가장 좋아하고 이 대통령께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신 고졸시대'를 연 것이다.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설립 등 다양한 고교 선택을 통해 대학 진학률이 84%에서 71% 선으로 떨어졌다. 무조건 대학가는 추세가 고교 졸업 후 취업하는 새로운 경향으로 바뀌었다. 마이스터고는 성공이다. 이 정부에서 35개가 설립됐고 추가 인가를 받은 곳이 7개다. 특성화고도 이 정부 출범 때 취업률이 10%대였는데 지금은 50%대로 올랐다. IMF 이후 고졸 채용을 하지 않던 은행권이 고졸 채용에 나섰다. 이는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무조건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에서 벗어나 내실있는 직업 교육을 통해 취업하게 한데다 생산 현장에서도 지나치게 대졸자가 많은 학력 간 매스매칭이 있었는데 그게 해소되는 계기도 됐다. 이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특성화고는 2, 3류 고교가 아니다. 오히려 일반고보다 더 선호되고 있다. 특성화고에서도 대학에 진학을 하지만 원래 취지대로 취업중심학교로 바뀌고 있다. 우리 교육의 큰 진화이다.
-그래도 교육 개혁 추진 과정에서 미흡한 점은 없었는가?
"최근 사교육에 관한 통계가 나왔다는데 사교육비가 21조원대에서 19조원대로 많이 줄어들었다. 서민들이 느끼기에는 여전히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입학사정관제 도입 등 입시 제도라든가 이런 쪽에서는 변화가 많이 있었음에도 이에 상응하는 현장의 변화가, 학생들에게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공교육에 만족할 수 있다든가 하는 그런 변화는 부족하다. 최근 인성 교육과 창의성 교육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피부에 와 닿을 만큼의 변화는 없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부실 대학 퇴출 등 대학 구조조정에도 남다른 신경을 썼다.
"이 정부에서 세계 200대 대학에 2개에서 6개로 늘어났다. 서울대와 KAIST'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포스텍이 들어갔다. 대학의 퀄리티(quality)가 높아졌고 구조개혁을 통해 5개 대학을 처음으로 퇴출시켰다. 국립대 총장직선제를 폐지하고 공모제로 바꿨다.
대학 구조개혁도 진전이 있었다. 대학들도 학과 간의 벽을 허물고 특성화 추진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좀 약했다. 제 블로그가 '긍정의 변화'다. 그런 긍정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본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제가 출마를 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대학 구조개혁이 중단될 것이라는 소문이 의도적으로 난 적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다시 과학기술 분야를 분리시킨 교육부로 되돌아가게 됐다.
"교육과학기술부 체제는 교육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통해 인재 양성과 기초과학을 활성화한다는 그런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제 교육부 체제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충분히 그런 취지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MB 정부가 추구했던 교육과 과학기술 간의 융합은 계속될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새로운 융합을 위해 만든 부서다. 물론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든 사람으로서 아쉬움은 있다. 새 정부는 이니셔티브가 있으므로 존중해야 한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과 산업의 융합으로 그런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영국 같은 곳에서도 부서를 쪼개는 것은 빈번하다. 산업정책과 이노베이션정책(과기정책), 교육정책, 이 세 가지를 함께 엮기도 한다. 영국은 'BIS'라고 비지니스와 이노베이션과 스킬스를 하나로 묶었다. 중요한 것은 융합의 정신을 잘 살리는 것이다."
-이번 졸업 시즌에 10여 개 초중고 졸업식에 직접 가서 격려하고 있다.
"이 정부의 마지막 해이기 때문에 이 정부가 추진하던 다양한 학교가 있다. 자율형 공립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기숙형고 등 다양한 고등학교와 대학도 영진대학교 등 링크대학도 있고 그런 다양한 학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또 장관이 직접 가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다. 장관이 직접 축사하면 좋아한다.(이 장관의 모교인 청구고에서도 졸업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있다고 묻자 '거긴 가면 안 된다. 공직을 떠난 후에는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나로호 발사 성공을 축하한다.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노심초사했겠다.
"사실 손에 땀이 났다. 1, 2차 발사 실패 후 3차 때는 '양치기 소년 효과'때문인지 많은 국민들이 큰 기대를 하지 않더라. (차기 정부로)연기하자는 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는 국운이 있는 나라라면서 하자고 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러시아와의 계약도 끝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든 간에 마무리하고 한국형 발사체로 가야 했기 때문에 연기는 있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실패 후 고흥에 가서 격려할 때 (나로호가)고흥이 너무 좋아서 날아가지 못하는 것 같으므로 꼬리 부분을 몇 번 두드리면 날아갈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래서 제가 가서 두드려줬다. 그래서 성공한 것 같다. 엄청난 프로젝트지만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 장관은 퇴임 후 KDI 대학원으로 돌아가서 논문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이라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
정치 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딱 좋은 나이에 정치권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만큼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다"면서 "돌아갈 곳(KDI)이 있어서 마음이 설렌다. 일단 학교로 돌아가서 쉬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현재 KDI 교수직 휴직 상태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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