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이 상종가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아리랑 원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해 말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부터다. 몸값이 올라가자 이웃나라들도 넘보고 있다. 이미 중국은 2010년 국무원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재)으로 지린성 옌볜 자치주의 아리랑을 등재했다.
일본에서는 아리랑 전문 관현악단까지 등장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자칫하다간 '아리랑'을 빼앗길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있다. 30여 년간 아리랑만을 연구해 온 김기현(63)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리랑 박사' '아리랑 지킴이'다.
경북대 인문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연구실은 온통 아리랑 관련 책자와 음반, 그리고 각국에서 수집한 자료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어림잡아 1천여 권이 넘을 듯하다. 그가 30여 년 동안 정성껏 모은 자료다.
◆'아리랑'은 모두의 것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가락이자 우리 민요인 '아리랑'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됐다는 낭보였다. 심사위원 만장일치. 아리랑이 한국인의 노래를 넘어 70억 전 세계인의 노래로 퍼져 나가게 된 셈이었다. 더구나 '아리랑, 아라리요'의 후렴구와 가사로 이뤄진 우리나라 각 지역마다 전승돼온 '모든 아리랑'이 포함됐다.
김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문화재청 아리랑 유네스코 등재 연구사업단 책임연구원으로 활약했다. "유네스코가 한국 사람 누구나 쉽게 따라부르는 아리랑이 각 지역 특색에 맞게 재창조되며 다양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있는 점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특히 중국이 '조선족 아리랑'을 국가급 무형유산으로 등재해 논란을 빚은 점을 감안하면 유네스코의 결정은 아리랑을 대한민국의 문화로 국제사회가 확인한 것이지요."
김 교수는 책임연구원으로 있던 2년간 줄기차게 중국의 아리랑 무형문화재 등재에 맞서기 위해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북한과 해외동포를 포괄할 수 있는 선언적 문구를 반드시 삽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네스코 등재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리'가 들어간 후렴구와 가사로 이뤄진 우리나라 각 지역마다 전승돼온 '모든 아리랑'이 포함됨으로써 중국이나 일본이 아리랑 노래를 무형문화재로 등재해도 결국 우리 '아리랑'이 되는 셈이죠."
우리 아리랑을 지키는 데는 김 교수의 연구가 큰 힘이 됐다. 그는 30년 동안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각종 문헌과 자료를 수집'연구하면서 아리랑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일에 매진했다. 관련 논문도 10여 편에 이른다. 유네스코 등재 결정 시에도 김 교수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논문들이 상당한 영향을 발휘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아리랑 모음 음반 출반 등 아리랑에 관련된 갖가지 기념사업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아리랑의 세계화와 국가 브랜드화 사업을 연동시키는 일도 하고 있다. "아리랑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부르는 노래입니다. 남과 북은 물론 해외에 사는 모든 동포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주인이 따로 없습니다."
◆다시 '언제 아리랑' 될지도
기쁨도 잠시. 연초부터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아리랑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몸값이 높아진 아리랑을 선점하려는 경쟁이다. 3대 아리랑의 고장인 강원 정선, 전남 진도, 경남 밀양뿐 아니라 경북의 문경'영천'상주 등 지역 지자체도 서로 '아리랑 원조'라고 주장하며 기 싸움에 나섰다. 이들 지자체는 박물관 및 전시관 유치에 나서는가 하면 각종 축제와 홍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움직임이 달갑지만은 않다. 아리랑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 없이는 이 같은 열기도 곧 사라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리랑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아리랑 고개만큼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외면받던 아리랑은 1980년대 들어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면서 관심을 받다가 이내 잠잠해졌습니다. 월드컵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최근 아리랑의 인기도 중국이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아리랑입니다."
중복'과잉 투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최근 아리랑과 관련된 박물관'공연장'전시장 조성이 지자체별로 유행이 돼 버렸습니다. 일시적 관심이나 과잉 투자를 하는 것은 세금 낭비에 불과합니다. 엄정하게 과학적으로 검증된 아리랑을 집단적으로 유지'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2006년 문화재청이 아리랑 실태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막상 국회의 반대로 무형문화재 지정에 실패했어요. 그런데 2011년 6월 중국이 문화재로 지정하니 국회에서 부랴부랴 예산을 편성해서 한 달 뒤에 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아리랑 사랑
김 교수와 아리랑과의 인연은 대학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대 국문학과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가사나 시조에 관심이 많았다. "고교 때부터 유명한 문학소년이었지요. 마산에서 중'고교를 다닐 때만 해도 시와 소설을 틈틈이 쓰기도 했습니다. 1979년에 문단에 데뷔했고 현재도 대구시인협회'대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전국 각지를 돌며 가사나 시조를 수집하고 공부했다. 그러나 이내 시큰둥해졌다. "가사나 시조는 바탕이 양반문화지요. 겉으로 우수하고 문학적이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가사나 시조를 공부하면서도 채워지지 않은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경주에 들렀다 '동학가사'를 접하게 됐다. 귀가 솔깃했다.
"가사를 통해 전해진 '동학의 시조' 최제우 선생의 생각들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민중의 목소리와 현실성 있는 이야기들이 제 가슴을 채웠지요." 대학원으로 진학한 그는 민요전승이론을 전공했다. 특히 아리랑이 좋았단다. 이병도 박사 등 아리랑 관련 논문을 단숨에 읽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아리랑 고장을 기행했다. 이 과정에서 진도아리랑은 여성성이 강하고, 밀양아리랑은 남성적이며, 정선아리랑은 삶을 노래했고, 해외동포의 아리랑은 눈물이며 조국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주말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아리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아리랑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연구자로서의 명성도 차곡차곡 쌓아갔다. 대학원 조교 시절 때인 1983년 당시 미원제과에서 학술지원을 받기도 했다. 2년 뒤 밀양아리랑에 대한 최초의 연구 발표는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변심(?)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명절날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면 으레 '자네는 언문한다면서 상놈들 노래 공부하러 다닌다며…' 하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한학을 배웠던 집안 어른들이 많은 터라 이 말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러나 아리랑 사랑을 막지 못했다. "아리랑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안타까워졌습니다. '이렇게 좋은 노래가 왜 자꾸 사라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요. 그래서 평생 아리랑을 연구하기로 결심했지요."
◆세계인의 노래로 성장
"아리랑은 민족주의가 싹트던 1860년대부터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던 노래였습니다. 일제의 압제를 견디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지요. 해방 후에는 좌'우익이 '아리랑'으로 애국가를 대신했고, 1953년 휴전회담 조인식 직후 북한과 유엔군이 동시에 아리랑을 연주했습니다. 아울러 1989년 3월 판문점에서 남북이 아리랑을 단일팀 단가(團歌)로 하기로 합의했으며 2002년 아리랑축전과 월드컵대회를 통해 상생의 노래가 됐지요."
김 교수는 아리랑을 통해 남북 문제는 물론 해외동포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동시에 아리랑 정신을 세계적 보편정신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아리랑이 넘어야 할 고개가 만만찮다. "아리랑을 제2의 애국가라고 외치면서도 아직까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 못했습니다. 규범적 안내서나 정리된 자료 목록조차 없지요. 아리랑 전문 연구소나 박물관, 상설 공연장 하나 없고 국가 차원의 학술모임 한 번 제대로 열린 바 없습니다. 최근에는 음악 교과서에서조차 사라졌습니다." 알고 보면 참담하고 부끄럽고 아리랑 가락처럼 슬프기만 한 아리랑의 모습이란다.
아리랑 전승의 역사, 광범위한 문화적 파장, 대중적 호소력, 현대문화와 문학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가치에 비해 평가절하된 부분이 많다. 아리랑은 같으면서도 다르고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지역적이면서도 국제적이고 전통적이면서 최첨단적이라는 설명이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방치한 아리랑'이 아니라 '참아리랑'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관련 자료의 아카이브 구축, 체계적 수집과 보존, 학술지원 등을 비롯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안목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아리랑의 세계화가 시급했을까? 김 교수의 말이 갑자기 빨라지고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갔다.
"부르지 않는 아리랑은 노래가 아닙니다. 역사와 삶의 애환을 노래해야만 아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향토아리랑을 되살리고 내외국인들에게 체험하고 습득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전문가와 정부, 국민이 함께 지혜와 힘을 모을 때 다 함께 아리랑 고개를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김기현은=서울에서 태어나 마산중'고를 졸업했다. 경북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밀양아리랑 연구를 시작으로 아리랑 연구에 나섰다. 경북대 인문대 학장과 국제대학원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한국민요학회'한국대중가요연구회'한국문학언어학회 회장을 지냈다. 2011년부터 2년간 문화재청 아리랑 유네스코 등재 연구사업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아리랑 세계화 추진 자문교수, 문경새재 아리랑축제 추진위원회 위원, (사)한민족아리랑(보존)연합회 대구경북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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