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거주자 3만 명 시대. 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가 지난해 3만 명을 넘어섰다. 대구경북을 찾는 관광객 수도 연간 140만 명을 돌파했다. 대구시가 집계한 지난해 대구의 외국인 주민은 3만1천231명. 여기에 대구경북권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이 1만여 명에 이른다. 사실상 대구가 다문화 도시로 변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규모는 작지만, 서울 이태원 같은 외국인 거리도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대구의 대표적인 다문화 거리로 급성장하고 있는 북부정류장 인근 다문화 거리를 찾았다.
◆다문화 거리 등장
14일 오후 대구 서구 비산동 북부시외버스정류장 입구. 외국인들을 위한 상점 50여 곳이 성업 중인 북부정류장 주변은 대구 대표적인 외국인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거리 풍경이 지역 내 다른 곳과는 사뭇 달랐다. 길을 걷는 여러 국적의 시민,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 이국적인 글자. 다방과 노래방 간판도 간혹 눈에 띄었다.
정류장 바로 앞에 들어선 한 가게에 들어서자 알싸한 향신료 향기가 코를 감싼다. 유창한 우리말의 주인이 자리를 안내했지만 조금 다른 모습과 억양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가게는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각종 식품을 팔고 있다. 고향 음식이 그리운 대구의 외국인 노동자나 유학생들이 이곳을 많이 찾고 있다. 이 가게 옆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휴대전화 가게도 줄지어 있다.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들이 손쉽게 핸드폰을 개통하고 후불제 요금 등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통신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이곳에는 '선불폰 판매' '핸드폰'여권 개통 가능' 등 동성로 통신골목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휴대폰 판매점들도 있다.
휴대폰 매장을 찾은 베트남인 보틔부창(29'여) 씨는 "오늘 친구 생일이라 친구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들렀다"고 했다. 친구인 탄티감(28'여) 씨는 "북부정류장에 오면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고 고향에서 먹던 과자나 향신료를 구할 수 있어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들른다"고 했다.
중국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손영(36) 씨는 "5년 전 문을 열 때만 해도 서너 개에 불과했던 외국인 상점이 지금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공단 근로자나 외국인 투자자, 이주여성 등 오는 손님 유형도 다양하다"고 했다.
이곳이 다문화 거리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4, 5년 전부터다. 서대구산업단지 등 인근 공단과 북부정류장을 통해 경북지역 외국인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외국인 거리가 조성됐다. 인근 비산염색단지나 서대구산업단지 등지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와 칠곡, 구미, 김천 등지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북부정류장에서 모임을 갖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을 상대하는 상점이 들어선 것이다. 지난해 7월, 이주민인권센터가 들어선 데 이어 동남아 음식점과 클럽들도 속속 들어서면서 명실상부한 다문화 거리로 부상했다.
김재영 이주민인권센터 센터장은 "대구의 대표적인 다문화 거리로 알려지면서 주말이면 4천여 명의 외국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입소문이 나 관광차 이곳을 들르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다문화의 산실
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갖가지 외국 음식점과 클럽들도 함께 들어서 새로운 음식'유흥 문화를 이끌고 있다. 기자가 찾은 날, 아랍권 국가의 전문 음식점 앞에서는 3, 4명의 모슬렘이 하얀 모자를 쓴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6개월 전 이곳에 아랍 음식점 한디 레스토랑을 오픈한 압둘 라시드(40) 씨는 "개점 초기에는 파키스탄 등 아랍권 손님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아랍 음식을 맛보기 위해 한국인 손님들도 많이 찾는다"고 했다. 손님 샤니(40) 씨는 "친구들과 회식할 때면 이곳을 찾는다. 고향에 온 듯하다. 정보도 교환할 수 있고 스트레스나 향수를 달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같은 아랍 전통 레스토랑인 알리바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노만(30) 씨는 "가게를 찾는 손님 중에 60% 정도가 외국인이고 나머지는 한국 사람들이다. 특히 주말이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고 했다.
주거 문화도 크게 바뀌고 있다. 외국인 전용 아파트나 빌라들이 점점 늘면서 색다른 주거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 정류장 뒤편에 줄지어 있는 여관들에도 외국인 장기 숙박객이 늘고 있다.
한 여관 주인은 "시설이 열악해도 하루 5천원 정도면 숙박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인 장기 숙박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주민 최영수(50) 씨는 최근 많이 달라진 동네 분위기에 놀라고 있다. 직장이 가깝다는 장점 외에 최근에는 외국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거리 풍경까지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동네 산책하러 나가봐도 5명 중의 1명 정도는 꼭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 거기다 최근에 우후죽순으로 느는 외국인 음식점과 외국인 바 등 덕분에 가끔은 외국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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