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이 선고하러 법정에 들어갈 땐 어떤 마음일까. 선고하는 게 직업인 만큼 무덤덤할까 아니면 선고 때마다 감정의 동요가 있을까.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으로 흔들림이 없을까 아니면 법대에 앉기 전까지 고뇌할까.
물론 모든 판사, 모든 정황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 대체로 법정에 들어서기 전까지, 법대에 앉아 선고 직전까지 고민하거나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되뇌어 본다. 재산상의 희비가 엇갈리는 민사소송, 복역 여부 및 형량이 결정되는 형사소송, 국가 중대사가 걸린 행정소송 등 가릴 것 없이 당사자에겐 사활이 걸린 중요한 결정인 만큼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심지어 선고하러 들어갈 때 써 간 판결문과 다른 판결을 내리거나 선고를 연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한 판사는 "법정으로 걸어가면서, 법정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법대에 앉으면서, 선고하기 직전까지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형사사건의 경우라면 '형이 너무 무겁진 않나' 등의 고민"이라며 "합의부의 경우엔 3명이 법정을 향해 걸어가면서까지 선고 내용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는데, 선고 직전에 마음을 바꿔 다른 판결을 하거나 선고를 연기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고 귀띔했다.
판사들이 재판을 앞두고 밤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못하거나 결심공판을 하고도 공판을 재개해 다시 재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전국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구고등법원 형사부의 훈민정음 해례본 항소심 사건의 경우 재판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재판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결심공판을 한 뒤 재판부가 직권으로 다시 공판을 재개해 3차례 더 진행한 끝에 선고하기도 했다.
이 사건의 경우 1심에서 유죄, 민사 소송에서도 유죄 판결이 난 만큼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내려도 피고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심사숙고한 끝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정에 들어갈 때의 마음이 투영되듯 선고할 때 판사들 표정도 전반적으로 무덤덤하거나 어둡다. 당사자 간, 또는 개인의 신상에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의 연속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표정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형사부 판사는 선고할 때 대체로 무표정하거나 엄숙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 얼굴을 찡그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몇 달에 걸쳐 법정과 자료 검토를 통해 모든 전후 사정을 들은 뒤 유죄 여부 및 형량을 선고해야 하는 만큼 마음이 편할 리 없고, 반대로 죄가 분명히 있는데도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해야 할 때 역시 화가 나고 속상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판사의 마음은 갈대가 아니다. 갈대여서도 안 된다. 분명한 원칙과 객관적인 기준, 증거로 판단하고 선고해야 한다. 물론 절도 등 각각의 범죄에 대한 최솟값과 최댓값이 정해진 '양형 기준'이란 게 있어 판사 마음대로, 얼토당토않은 형량을 선고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판사가 갈대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사건 관련자들을 바라보고 판단, 일찍부터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고 직전까지 최대한 많은 증거와 증인, 범죄 사실, 증언, 자료 등을 총동원해 판단하고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하는 측면에서다. 이런 마음으로 재판해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하고, 또 아무리 죄를 지었더라도 죗값 이상의 과도한 형량을 선고받는 또 다른 피해자도 생기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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