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세상 별난 인생] 히말라야에 빠져 히말라야 작품 화가 최동열 씨

붓글씨 쓰다 미술 독학…파격 화풍 세계적 주목

인상과 차림새는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 같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귀엽다 못해 천진스럽다. 겉으로 봤을 때는 역경의 삶이 묻어나 있지 않다. 인생과 작품을 설명할 때는 아이처럼 웃으며 얘기한다. 그러나 매일 자신의 몸을 정화하고 있다고 했다. 좋은 그림은 자신의 몸부터 깨끗이 한 뒤 그려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그런 그가 요즘 히말라야에 푹 빠졌다.

네팔 히말라야 가운데 웅장하게 솟은 안나푸르나봉. 만년설이 보이는 산 아래에 나신의 한 여인이 요가 자세로 산을 고즈넉이 바라보고 있다. 산 능선과 여인의 풍만한 곡선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화가 최동열(62) 씨가 히말라야를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로 여성의 누드 하면 앞모습을 연상하지만 최 작가는 뒤태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에로틱한 느낌보다는 명상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예전에는 도시 야경을 주로 그렸는데 히말라야를 그리고 나니 계속 그리고 싶어진다. 산을 보면서 산수화가 아닌 추상화를 그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일탈을 꿈꾸며 히말라야 등 전 세계 오지를 다니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을 화폭에 담고 있는 그는 "안나푸르나, 칸첸중가, K2 등을 걸으며 먼 이국이 아니라 고향 품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에 설렌다"며 "멀리서 보며 그리는 산수화가 아니라 껴안으며 그린 관능적인 누드"라고 했다. 히말라야 시리즈는 히말라야 트레킹과 카라반을 통해 최 씨가 직접 산을 스케치하고 작업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변호사 집 맏손자

최 씨는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그림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그는 어느 날 화가가 되어 있었고, 어느 날 돌아보니 주목을 받고 있었다. '한국의 고갱'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국내 유명 미술관과 재벌가에서 그의 그림을 사들이기 바빴고 전시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 씨는 1951년 서울 인사동의 99칸 한옥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머니는 '벙어리 삼룡이'의 작가 나도향의 누님으로 3대에 걸친 의사 집안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최진 선생은 일제강점기 조선을 대표하는 변호사였다. 사재를 털어 한국 최초의 법학연구단체인 법학협회를 결성했고 3'1운동 민족대표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1922년 애국지사들을 변호하던 최진 선생은 한국전쟁 때 납북된다.

할아버지가 납북되자 집안이 몰락하면서 그의 가족은 부산으로 피란한다. 경기중학교에 입학할 만큼 영특했던 최 씨는 이승만 박사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다. 경기고, 서울대,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그의 큰 꿈은 경기고 진학에 실패하면서 좌절된다. 검정고시를 치러 15세에 외국어대학교 월남학과에 진학한 그는 또다시 막다른 선택을 한다. 해병대에 덜컥 지원을 해버린 것이다.

2년 동안 베트남전에 첩보대원으로 참전했다. 제대 후 미 국무성 초청 방문학생으로 도미해 유도와 태권도 사범, 공장 노동자, 바텐더, 술집 문지기 일을 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붓글씨 연습을 하다가 반 고흐와 폴 고갱을 동경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뛰는 말'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화가로서의 첫발이었다.

"어느 날 아파트 발코니에서 붓글씨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 고흐와 폴 고갱을 동경하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정육점으로 가서 고기를 싸는 종이를 한 통 샀다. 길이가 자그마치 100m나 되었다. 이 종이 위에 '뛰는 말'을 그리고 또 그렸다. 100m나 되는 종이에 계속 말을 그려 나가다 한 1천 마리쯤 채워졌을 때,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한 획으로 말 한 마리를 그려냈다. 말 그림을 시작으로 나는 미술 세계에 입문했다."

1980년대 세계 미술의 본거지인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 작품 활동을 펼치며 촉망받는 화가로 성장한 최 씨는 1987년 첫 귀국전을 했을 때는 독특한 이력과 파격적인 그림으로 눈길을 끌었다. 현재 미국 워싱턴주 한 시골마을에서 라벤더 농장을 운영하며 화가이자 부인인 엘디 로렌스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품 세계

히말라야 연작에서 드러나는 그의 관계에 대한 관찰과 고뇌의 결과는 자연과 인간의 삶으로 귀결된다. 안과 밖, 자연 속에서 개인의 공간은 얼마만큼의 공간인지, 어디에 속하는지, 통제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자연과 함께 가야 하는지, 아니면 자연을 통제해야 하는지, 같은 끝없는 물음이 되어 나온다. 그는 이런 갈등 속에서 히말라야라는 태고의 웅장한 자연을 풀어낸다. 건너편에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와 칸첸중가, K2봉이 그려지고 그것을 관조하는 누드를 안에 넣어 공간을 구분한다. 하지만 이는 벽과 창에 가로막힌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안나푸르나를 걸으며 먼 이국이 아니라 고향의 품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사랑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 최 씨의 말처럼 그의 작품 속 이미지는 따뜻하다. 멀리서 바라보며 그린 산수화가 아니라 껴안으며 그린 산의 초상화는 관능적인 누드로 표현되었지만 이는 에로틱하다기보다는 경건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자유는 계속되다

자유분방해도 너무 자유분방했다. 백발에 커피를 마시며 웃는 그의 모습에서 월남전, 술집 문지기의 모습은 찾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가 터뜨리는 너털웃음에는 아직도 20대의 자유분방함이 묻어났다.

최 씨는 "안나푸르나, 칸첸중가, K2봉 등 히말라야 봉우리들은 등산의 대상이 아닌 인류의 신들이 사는 거주지에 더 가깝다"고 했다. 그만큼 경이로워 범접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당분간 히말라야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문학적 재능 또한 뛰어난 그는 자전적 소설 '늑대와 선임하사'와 자서전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출간했다. 이달 중순에는 철학적 관점에서 본 미학책 '아름다움은 왜'를 내놓을 예정이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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