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도 오래하다 보니 어느새 일상생활처럼 됐어요. 이젠 이게 내 직업인 셈이죠. 1998년 5월 외환위기 당시 시작했으니 올해로 16년째 해오는 일이 됐네요. 처음엔 이렇게 오랫동안 할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닌데 말이죠."
대구역 뒤편 철로변 담장 아래 '노숙인무료급식센타'라고 쓰인 33㎡(10평) 규모의 낡은 컨테이너 안에서 저녁 찬거리용 무를 썰던 김무근(63) 씨가 툭 던진 말이다. 이곳에서의 김 씨 직함은 '무료급식센터장'. 매일 저녁 250여 명이 먹을 밥과 국, 세 가지 반찬을 장만해야 하기에 김 씨의 손길은 바쁘기 그지없다.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시작되는 배식에 적게는 180여 명, 많게는 280여 명이 이곳을 찾는다. 일주일에 나흘은 센터를 돕는 자원봉사자들과 종교단체 등에서 밥과 반찬을 갖고 와 배식하고 나머지 사흘은 김 씨가 직접 컨테이너 한쪽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한다. 배식은 매월 첫째 일요일 하루만 쉰다.
16년 전 IMF 당시 대구역 뒤편에 도시철도 대구역사가 생기면서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어느 날, 인근 교회에서 국수 30인분을 나눠주자 많은 노숙인들이 서로 먹으려 다투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배고픔이 절실할까' 하는 생각에 김 씨가 컵라면 50여 개를 이들에게 나눠준 것이 점차 인원이 늘면서 아예 밥을 배식하자고 마음먹은 게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요즘은 젊은 실직자들이 부쩍 늘어났어요. 아마도 금전적 혹은 구직난으로 노숙인이 된 것 같은데 흔히 점심급식엔 60대 이상이 90%가 넘지만 우리처럼 저녁급식을 하는 곳엔 반대로 60대 이하부터 20대가 90%를 차지하고 있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 씨는 이곳에서 '노숙인들의 대부' 혹은 '노숙인들의 수호천사'로 통한다. 이곳은 급식 때 젊은 층이 많다 보니 가끔 다툼도 일어나고, 또 욱하는 성질을 못 이겨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땐 김 씨가 범죄예방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어려운 처지지만 역경을 헤져나갈 의지가 있는 노숙자를 대상으로 관할 구청에서 실시하는 취로사업을 알선해주기도 한다. 그의 도움으로 방을 얻어 자립한 노숙자들도 다수이다.
김 씨의 이 같은 선행에도 주위의 오해 또한 많이 따랐다. 노숙자들의 통장을 관리해주다가 엉뚱한 오해도 받았고 "급식은 당연히 정부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반찬이 왜 이렇게 형편없냐"며 투정을 부리는 노숙인들과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이 일이 조금 힘에 부쳐요. 처음엔 몇 년만 하려고 했는데 세월이 이렇게 훌쩍 지나버렸네요. 선진국도 실직'노숙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 씨에게 바람이 있다면 노숙자들에게 노천이 아닌 실내에서 식사를 하게 하는 일. 덧붙여 그동안 무료급식이 배고픔 해결이 급선무였다면 이제는 노숙자들이 보다 열심히 살면서 남의 것을 탐내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제도권 안에서 노숙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면 좋겠습니다. 노숙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들 중 1년에 10~20% 정도만 자립하는 것 같습니다."
대구 북구 칠성동에서 나서 자란 그는 20년 넘게 자율방범대를 이끌어 왔고, 청소년 선도 등 지역의 궂은일 또한 마다치 않았다. 이러한 그의 봉사정신은 30여 회가 넘는 각종 수상이 대변하고 있다. 그의 봉사 마일리지는 2만여 시간을 넘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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