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뭔가 만든답시고 혼자 밤새 뚝딱거리며 온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더니 제대로 끝내지도 못한 채 뒷정리는커녕 늦잠만 잤다. 결국 숙제마저 제때 하지 못했기에 크게 꾸짖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화를 낼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때만 해도 자식 교육을 위해 엄한 아버지가 되어야 했고,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아들은 개구쟁이 짓도 사라지고 점차 다듬어져 갔다.
일찍이 미국의 경제학자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창조도시의 조건으로서 3T 즉,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을 들고, 이 3가지가 골고루 갖춰진 도시일수록 도시의 창조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관용을 재는 척도로서 '게이지수'(Gay Index)를 제시했다. 게이, 즉 동성애자가 많이 사는 도시일수록 사회적 포용력이 많고 다양성이 높다는 뜻이니, 이는 곧 창조도시의 여건이 잘 갖추어진 곳으로 봤던 것이다. 물론 창조적 활동가가 곧 게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실제 게이의 분포가 가장 높았던 실리콘밸리를 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사회에서 1960년대 반전운동과 히피 문화의 본고장으로서 동부의 보수성에 대응하여 혁신적인 문화가 탄생했던 도시이다.
한편 몇 해 전 대구를 방문한 적이 있는 랜드리(Charles Landry)는 창조환경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지역의 독창적인 예술문화가 큰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즉 탈공업화 도시 과정에서 사양산업인 제조업을 대신해서 영화, 음악, 문학 그리고 디자인과 같은 창조산업의 등장은 당연하며, 그 덕에 도시 경쟁력이 커지고 고용 효과가 높아진다고 보았다. 유네스코에서도 창조도시의 조건을 창의적 인재와 창의적 환경과 창의적 활동으로 규정하였다. 정리해보면, 역시 실험 정신이 왕성한 사람이 있어야 하고 부가가치로 이어질 창작활동이 왕성해야 하며 아울러 이 둘을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도시 디자인 차원에서 볼 때, 변화를 인정하며 다양성을 뒷받침해주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포용적인 그릇 만들기가 중요해졌다.
에디슨처럼 천재는 1%의 아이디어와 99%의 노력의 결실이라 한다. 이제 1%의 창조적 활동을 위한 예외적인 행동도 참아주고, 99%의 지루한 노력도 기다려주는 여유도 필요하다. 천재는 기인과 같은 과학자일 수도 있고 변덕스러운 예술인일 수도 있다. 우리 식으로 보면, 끼가 많은 사람이다. 끼 많은 사람의 창조 행위, 즉 첨단산업에서 기술발명을 하든, 문화예술 영역에서 작품을 창작하든 또는 대학 연구실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든, 이 모두가 비록 성공을 보장하지 않지만 절실하고도 처절한 활동이다. 그러하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 풍토를 위해서 선의의 실수도 용인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9'11사태 이후 미국 사회에 지배적이었던 '무관용의 원칙'(Zero Tolerance)처럼 우리 사회에서 엄정한 법질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창조도시의 아량도 당연히 법 테두리 내에서 포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하니 규제와 예외 사이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이는 정치행정과 경영 분야의 과제이다. 상업적 실적주의나 경직된 관료주의는 관용의 창조도시와는 상극이다.
먼저 너그러움을 되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너그러운 사회는 이전과 다른 행위나 유별난 사람 혹은 외지인도 거리낌 없이 편하게 받아들이는 사회다. '낙동강 오리알'이란 자조적인 말도 사라져야 하겠다. 다만 요즈음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대에 너그러움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리일까. 게다가 너그럽다 보면 자칫 전통 방식과 내적 질서가 흔들릴지 모른다. 하나 머지않아 절실한 과제로 다가올 것이 뻔하다. 도시가 죽고 사는 경쟁력의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너그러운 사회는 별난 자식도 미소를 잃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참고 기다리며 받아들이는 어머니와 같다. 혹시 수년 전 아들 녀석을 좀 더 참고 보듬어 주었으면 오늘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헛된 망상일까? 하나 망상도 창조도시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요한 속성이 아니겠는가.
김영대/영남대 교수·건축학부 ydkim@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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