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간암 아주머니의 선물

어느 날 아침 아내가 다려준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을 했다. 내가 가진 와이셔츠 중에 가장 좋은 와이셔츠. TV에서 '명품 드레스셔츠'라고 광고하던, 값이 좀 넉넉히 나가는 비싼 셔츠. 평소에도 명품이나 값 비싼 옷을 입지 않는 내가 그 비싼 와이셔츠를 샀을 리는 만무하고 그 옷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옷이다.

사실 이 옷을 입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아주머니. 그녀는 내가 돌보던 환자였다. 간경화로 내가 몇 년간 진료를 하던 환자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 없이 남매를 키워서 딸은 얼마 전 시집을 보냈고 아들은 군대에 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 있던 아주머니 사정상 이렇게 비싼 옷을 사기에는 부담이 됐을텐데, 몇 년 전 설을 앞둔 어느 날 외래로 찾아와서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놓고 간 옷이다.

간경화 환자는 간암 발생 위험이 높기 때문에 3개월마다 초음파 검사를 포함한 추적검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초음파 검사가 보험이 되지 않아서 어떤 환자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아주머니도 그런 경우다. 3개월 대신 6개월마다 검사를 하던 중 초음파검사에서 간암이 발견됐다. 초음파 검사를 한다고 해서 간암을 막을 수는 없지만 자주 하다보면 일찍 발견할 수 있고, 치료도 서둘러서 잘 할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시기를 놓친 것이다. 암은 약 5cm 정도 크기였다.

위치를 봐서는 수술도 생각해볼 만한 위치나 크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간기능이 너무 좋지 않아서 수술을 못하고, 간동맥 색전술(간암 세포로 흘러가는 피흐름을 막아 암세포를 없애는 것)을 시행했다. 한편으로는 참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우겨서라도 초음파 검사를 자주 하자고 강하게 권유하는 건데, 그랬더라면 더 일찍 치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이런 내가 뭐가 그리 고맙다고, 오히려 빨리 암을 찾아주지 못해 미안한 맘이 늘 가슴에 남아있었는데. 명절이 다가온다고 형편에 과분한 선물까지 가지고 오시다니, 그 돈이면 초음파 검사 한 번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마도 아주머니 생각엔 의사들은 이런 좋은 것 아니면 안 입는 것으로 생각을 하셨나보다. 그 후 얼마 전까지 가끔씩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치료를 받던 그 분, 회진 때마다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보려고 하시던 그 아주머니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아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간암이 파열되어서 갑자기 가셨단다.

오늘도 그 와이셔츠를 입고 다른 환자를 대하면서 나는 그 환자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의사가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환자 분들이 진료를 마치고 나가시면서 이렇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나는 "네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지만 속으로는 나도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싶다. "네, 저도 감사합니다."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