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크론병 알고 있는 윤혜인 씨

소화기관 전체에 염증…먹으면 토하고 설사

크론병을 앓고 있는 윤혜인(가명
크론병을 앓고 있는 윤혜인(가명'29'여) 씨가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해 어머니 정윤자(가명'58) 씨의 간호를 받고 있다. 모녀는 두 손을 맞잡고 힘을 내자며 서로 격려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지쳐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2일 퇴원한 윤혜인(가명'29'여) 씨는 퇴원의 기쁨보다 걱정이 더 앞선다. 언제 또 쓰러져 다시 병원으로 실려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윤 씨가 앓고 있는 병은 크론병. 지난해 9월부터 병세가 심해진 윤 씨는 구토와 설사 탓에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병원에 실려간 횟수만도 10번이 넘는다. 병원에 갈 때마다 1주일 정도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경과가 좋아 퇴원했지만 언제 어디서 쓰러져 다시 실려갈지 겁이 나요. 매일같이 구토와 설사에 시달려야 하는 생활이 너무 힘에 부칩니다."

◆가난,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윤 씨의 집은 가난하다. 부모님은 윤 씨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의성에서 작은 밭에 콩'보리 농사를 지으면서 겨우 생계를 꾸려나갔다. 아버지는 담석증과 대장 질환을 앓다가 윤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세상을 떠났다. 네 살 터울의 오빠가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내 앞가림은 내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 밥숟가락 하나라도 줄이는 게 나을 것"이라며 집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도 집을 떠난 뒤 생활비는 윤 씨와 윤 씨 남동생이 마련해야 했다. 어머니 혼자 농사와 시부모 봉양을 다 할 수 없어 할아버지, 할머니는 삼촌 집으로 가셨고, 작지만 농사를 지었던 땅도 삼촌에게 넘겼다.

게다가 어머니는 고된 농사일로 생긴 척추 협착증 때문에 더는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윤 씨와 남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직해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은 사치였다.

"제 월급으로는 고등학교 때 빌려 쓴 학비를 갚고 남은 돈으로 생활비를 했죠. 동생 월급은 지금 사는 집의 월세금과 공과금으로 들어갔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다른 생각은 안 했어요. 그저 집안에 남은 빚 갚고 무조건 돈을 모아 지금 살고 있는 월세 집을 탈출하고 어머니 병도 고쳐 드리는 게 스무 살 이후의 목표였어요."

◆병, 목표마저 꺾다

윤 씨는 구미에 있는 한 전자부품 공장에서 일하면서 '어머니를 좀 더 환경이 좋은 전셋집에라도 모시자'는 목표를 갖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26세가 되던 해 갑자기 아랫배가 참을 수 없이 아파져 왔고 심한 설사에 시달렸다. 구미에 있는 병원에 들렀더니 '대장 결핵'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1년 정도 통원 치료를 받았지만 잦은 설사와 구토로 영양섭취가 제대로 안 돼 몸무게가 31㎏까지 떨어졌고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쓰러진 윤 씨는 대구의 한 종합병원을 찾았고, '크론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크론병은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모든 소화기관에 염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 때문에 장의 기능이 약화돼 음식을 먹어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설사나 구토로 배설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윤 씨는 크론병을 앓으면서 식사가 가장 힘든 일이 됐다. 뭐라도 먹기만 하면 구토를 하거나 설사를 하기 일쑤였다. 소장에 생긴 염증이 음식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토와 설사를 며칠씩 반복하다 보면 몸이 지쳐 정신을 잃을 때쯤 돼서야 급히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다.

"병원에 갈 때는 버스를 타지 못해요. 버스 타는 중에 언제 구토나 설사가 나올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같은 동네에 사는 택시 기사분이 저를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가 와요. 한 번 오고 가면 택시비만 10만원이 들다 보니 어머니께 함부로 아프다고 얘기도 못 해요."

크론병을 앓으면서 윤 씨는 더는 일할 수 없었다. 기운이 없는 탓에 집에만 있는 생활이 이어졌다. 어머니에게 전셋집이라도 마련해 드리기 위해 모아둔 돈, 몇백만원은 윤 씨의 병원비로 들어갔다. 일하면서 가졌던 유일한 목표마저 무너져 버렸다.

◆"속 깊은 효녀인 내 딸이 왜…"

윤 씨는 도저히 견디지 못할 정도가 아니면 아파도 어머니에게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면서 참는다. 대구에 있는 종합병원에 가는 데 드는 택시비만 10만원이고, 입원까지 해야 할 경우에는 입원비를 합쳐 5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보조금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다.

그래도 어머니는 딸에게 아픈 기색이 보이면 병원으로 보내려고 한다. 어머니는 "혜인이가 돈 걱정을 할 때마다 '네 생명이 더 중요하다'며 혜인이를 달랜다"고 했다.

윤 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어머니에게 지급되는 월 77만원의 보조금 외에는 어떤 수입도 없는 상태다. 남동생은 2년 전 군에서 제대한 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끊겨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집을 나간 오빠는 간간이 연락만 할 뿐 도와줄 수 있는 사정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윤 씨가 크론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병원비와 생활비로 진 빚만 600만원이나 된다.

어머니 정윤자(가명'58) 씨는 착하고 효녀인 딸이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진다. 정 씨는 "혜인이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을 때 여기저기 돈 벌러 다니느라 집안일에 신경 쓰지 못했는데 혜인이가 할머니 대소변 가리는 것부터 모든 병시중과 집안일을 다 해냈다"며 "그렇게 착한 아이가 왜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렸는지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윤 씨는 병이 어느 정도 나으면 어떻게든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소한 약을 먹으면서 버틸 수 있을 정도만 된다면 간단한 아르바이트 일이라도 시작할 생각이다. 문제는 이 병이 언제 또 윤 씨에게 고통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 씨는 크론병에 시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너무 속상하다.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너무 슬프고 힘들어요. 가난해도 몸이라도 건강하면 그나마 뭐라도 해 볼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요. 저 때문에 어머니도, 남동생도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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