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테브레'라는 사람이 있다. 배가 난파되어 제주도에 왔다가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우리 군인들에게 무기기술을 전수시켰고, 병자호란 때는 직접 전쟁에도 참여했다. 효종으로부터 '박연'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궁녀와 결혼해 1남 1녀를 낳고 조선에 귀화한 사람이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내던 모 사학자가 경기도 용인 어디에 '박연'의 후손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어물어 찾아갔다. 어느 시골집 툇마루에 한 농부가 앉아 있었다. 한눈에 '박연'의 후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당신 화란 박씨 '박연'의 후손이지요?"라고 이야기하니 농부는 부엌에 가서 식칼을 가져오더니,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숱한 놀림과 멸시를 받으면서 살아온 이주민들의 삶의 한 단면이다.
본관을 화란으로 쓰지 않고 원산을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에 정착한 이주민과 그들의 자녀들은 사회와 학교로부터 따돌림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민족은 흔히들 단일민족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고려 초를 보면 인구 구성의 8.5%가 말갈, 발해 유민 등 외국인이었고, 지금도 한국인의 성씨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39개 정도가 외국계 성씨이다. 대구만 해도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우고 귀화한 김충선은 일본인이고, 역시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전공을 세우고 귀화한 두사충은 두보의 후손이다. 그들 각각은 대구의 녹동서원과 모명재에 모시고 있다.
그동안의 역사를 봐도,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은 인도에서 왔고, 고려 공민왕 때 귀화한 설씨들은 위구르계 즉 터키계의 후손들이다. 황해도에 가면 화산이라는 지명이 있다. 화산 이씨의 시조인 이용상은 베트남 왕족 출신이다. 미국에서 귀화한 로버트 하일은 영도 하씨의 시조이다.
재한 외국인 140만, 이주여성 22만 명이 살고 있는 이 시대, 과연 우리는 단일민족도 아니면서 단일민족만 고집하면서 살 수 있는가? 세계가 글로벌화되고, 하나의 생활권역인 이 시대에 과연 순혈주의만 주장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국권을 침탈당하고 하와이의 고무농장으로, 브라질의 커피농장으로, 북간도'서간도로 떠돌며, 나라 잃은 서러움을 겪은 우리 동포들을 생각해보라. 글로벌시대 다문화 가족과 그들의 자녀들은 우리의 소중한 인적자원이다.
꿈을 가지고 이 땅에 온 그들을 보듬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보살펴야 할 것 같다.
최규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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