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덧없는 꽃이다.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어 있더니만 주말 비에 깡그리 지고 말았다. 며칠 만에 조용하고 쓸쓸하게 사라지는 모습이 허무함 그 자체다. 그래서 벚꽃을 두고 '처연한 아름다움'이라 했던가. 그래도 며칠 전 휴가를 내 아내와 함께 경주 보문호에서 '벚꽃비'를 실컷 맞아봤기에 아쉬움은 없다.
흔히 벚꽃을 '일본 사무라이의 꽃'이라고 한다. 칼끝에 사는 사무라이의 삶처럼 순식간에 피었다가 지는 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일본 영화에는 벚꽃이 자주 등장하지만, '4월 이야기'(1998년 작)처럼 대부분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오히려 서양인이 만든 사무라이 영화에 벚꽃이 나온다. '라스트 사무라이'(2003년 작)에서 사무라이 지도자인 가츠모토는 알 그렌 대위(톰 크루즈 분)에게 "이 벚꽃처럼 우리 모두 죽지만 매순간 인생을 아는 것… 그것이 무사도(武士道)다"라며 제법 철학자 흉내를 낸다. 그리고 가츠모토가 싸움에 패해 죽을 때 어울리지 않게도 만개한 벚나무가 옆에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은 어쭙잖은 지식으로 벚꽃을 사무라이의 상징으로 사용했지만, 그것은 뒷날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상징 조작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벚꽃의 의미는 상당 부분 군국주의의 산물이다. 가미카제(神風)특공대가 모자에 벚꽃을 꽂은 채 미 함대에 자살 공격을 하거나 일본 여인네들이 학도병들에게 벚꽃 가지를 건네주는 것은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군국주의자들은 벚꽃을 통해 국민들에게 '천황과 조국을 위해 죽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진짜 사무라이가 활개치던 에도시대의 하이쿠(일본 고유의 짧은 시)에는 벚꽃을 주제로 한 것이 많지만, 대개 낭만적이다. '나무 아래에 국물도, 생선회도 벚꽃이로다' 꽃놀이를 하고 있으면 벚꽃비가 떨어져 국그릇 위에도 생선회 위에도 벚꽃으로 가득하다는 의미다. '두 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 연인의 짧은 만남과 슬픈 별리를 잠깐 피다 지는 벚꽃에 비유한 시다. '외로움에 꽃들을 피웠는가. 산벚나무야?' 어디에도 사무라이 이미지가 없다.
벚꽃은 일본 국화(나라꽃)도 아니다. 일본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꽃이라고 우리가 꺼릴 이유가 있을까.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보면 되지, 역사성이나 한일관계를 개입시키지는 말자. 그 화사로운 자태를 다시 보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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