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바다가

# 바다가 -허수경(1964~ )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창작과 비평사·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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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 따라서는 파도와 갯바위가 서로 집착하는 것 같다. 그렇지가 않다. 끊임없이 다가왔다 멀어지고, 한없이 품었다가 놓아주는 반복을 거듭한다. 끝내 다가가지만도 멀어지지만도 않고, 끝끝내 품지만도 놓아주지만도 않는다. 가고 오고, 만나고 헤어지고에 연연하지 않는다. 때 되면 오고, 또 때 되면 간다. 그냥 그런 거다.

이 시의 '나'는 갯바위에게 한 수 배우고 있는 중이다. 가시거리에, 가청거리에, 가촉거리에 누군가를 두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아픔을 겪고 있다. 떠나왔지만 마음은 떠나온 곳에 두고 온 것이다. 눈과 손이 아닌 것이다. 갯바위를 보면서 깨닫는 중이다. 허수경의 영혼은 최선을 다해 아파보는 버릇이 있다. 다행한 것은 자가 치유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약재로 갯바위를 찾아 쓴 것이다.

안상학<시인·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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