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문화예술계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문화예술계라기보다는 문화 정책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들이 대구문화예술계의 장래와 직결된 것이어서 대구문화예술계의 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는 이재화 의원의 대표 발의로 대구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 조례 일부 개정안을 상정 준비 중이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문화예술계는 물론, 재단 직원, 이사들조차 모른다. 조례 개정이 의회의 고유권한이라 하더라도 뭔가 이상하다.
개정안에는 사전에 알리기 껄끄러운 내용이 있다. 최종 안은 조율 중이지만, 초안에는 상임위가 재단에 직접 간섭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이사회가 정관을 개정하면 이사장인 시장과 함께 시 상임위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이 안은 승인에서 제출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상근 대표이사 체제를 상근, 혹은 비상근으로 바꾸고 이사를 겸임하지 못하게 했다.(이 부분도 상근일 때만 이사를 겸임하지 못하는 쪽으로 조율 중이다)
문화재단을 만든 것은 경직된 공무원 조직에서 벗어나 전문가 대표를 영입해 대구문화예술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자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의회 상임위가 나서 손발을 묶겠다는 것이다. 이재화 의원에 따르면 일부 재단 이사의 요구가 있었다 한다. 그 말대로라면, 재단 이사가 스스로 묶어달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다. 규제를 해달라고 요구한 이사나, 소수 의견을 내세워 다수 이사의 의견은 들어보지 않고 규제를 하겠다고 나선 상임위나 모두 상식 밖이다.
몇 년째 진척이 되지 않는 오페라 단체의 재단법인화 작업도 상임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특정 개인의 반대인지, 상임위 전체의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예 논의도 하지 않고 보류 중이다. 서울은 4년째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을 개최 중이고, 논란은 있지만, 부산은 3천억 원을 들여 매머드 오페라하우스 건설을 추진 중이다. 장기적으로 강력한 경쟁자가 될 다른 도시의 빠른 움직임이다. 10년째 국제오페라축제를 개최하는 대구시로서는 당연히 축제의 정체성과 미래를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인데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외부 전문가에 대한 개방의 정도가 어느 곳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우여곡절은 있지만, 이 흐름은 시대의 대세가 됐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시 상임위가 이를 거슬러 이것저것 간섭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 발전보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도 나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답답한 것은 대구문화예술계다. 여러 정책이 일방통행식이든, 중도 하차이든 무관심하다. 오페라 재단이야 음악 분야에 국한된 문제라 치더라도 대구문화재단의 문제는 그 중요성에서 대구문화예술계 전반의 문제다. 그런데도 대표 단체라 할 수 있는 대구예총이나 여러 협회는 모르쇠다. 대구문화재단 대표나 오페라하우스, 문화예술회관, 시립미술관 관장직 공모 때는 대구문화예술계를 걱정하는 전문가가 넘쳐나 이전투구의 전장이 되지만, 정작 문화재단 대표가 중도 사임하고, 공모 관장직에 공무원이 임명돼도 조용하다. '공동의 문제는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셈이다.
활동의 많은 부분을 대구시의 지원에 기대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개인과 단체가 시나 의회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시와 의회, 문화예술계 모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의 관계는 시혜자와 수혜자라는 갑을 관계가 아니라 대화와 협조를 통해 대구 문화예술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를 성취해야 하는 동반자 관계다. 그리고 이 관계의 기본 원칙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 앞에서 비전문가가 가타부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전문가 집단인 시와 의회는 전문가가 법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돈줄을 쥐고 있고, 법안을 만들 권한이 있다는 이유로 위세를 드러낸다면, 전문가 영입이라는 허울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전문가 집단인 대구문화예술계도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긴 하겠지만, 중요 정책 현안에 대해서는 의견을 모으고, 부당한 규제는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정당한 자기 목소리를 낼 때에만 갑을이 아닌 대등한 관계에서 공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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