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은퇴일기] 아내의 싹수

최근 대한민국 은퇴자 중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사람은 아마 김능환 전 대법관일 겁니다. 국무총리 자리도 대형로펌도 마다하고 은퇴 후 바로 출근한 곳은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이었습니다. 지위와 돈에 연연하는 세태에 그의 행보는 매우 신선했지요.

은퇴자의 입장에서 보면 '왕년에 내가 누군데'병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퇴직자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인 셈이지요. 그를 통해 우리의 은퇴 문화도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만일 김 전 대법관의 아내가 '대법관 사모님입네' 하고 집에서 우아하게 생활했다면 과연 김 씨의 인기가 오늘만 했을까 하는 겁니다. 당연히 신문 1면을 장식한 편의점서 물건 나르는 사진은 없었겠지요. 또 세인의 관심도 그만큼 높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대법관의 아내가 편의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인은 한 인터뷰에서 "공직생활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았다. 대법관을 그만두었으니 편의점을 열었다" 라고 했습니다. 막말로 지방자치단체의 국장 사모님도 편의점에서 물건 파는 일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 한 공무원의 아내는 "채소가게도 직접 꾸린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했지요.

많은 퇴직자를 만나보면서 은퇴 후 그들의 생활은 아내의 성격이나 능력에 달렸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물론 은퇴자 개인의 성격이나 살아온 이력 재력 등이 영향을 미치겠지요. 그러나 아내의 싹수를 알아보고 이를 키워주고 지원해 준 남편은 은퇴 후 즐거운 생활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았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붙임성이 좋은 아내를 둔 남편들은 아내의 네트워크에 얹혀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노느라 바쁜 생활을 합니다. 또 아내의 손재주를 알고 이를 지원해준 남편은 은퇴 후 아내가 하는 일을 돕느라 수입도 생기고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김 전 대법관 역시 최고의 은퇴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체면을 따지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아내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런 아내의 의견을 존중했고 또 지원을 했지요.

행복한 은퇴자가 되고 싶다면 미리미리 아내의 장점을 키워주고 아내의 재능에 투자하면 어떨까요. 아내의 싹수를 한번 밀어주자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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