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불편한 노래, 불편한 진실

포크 가수 밥 딜런이 1963년에 발표한 노래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와 같은 시기에 존 바에즈가 불러 널리 알려진 노래 '위 셀 오버컴'(We shall overcome). 1960년대 반전 평화 운동과 인종차별 반대, 시민권 운동의 상징이었다. 저항 의식을 담은 이 노래들은 가수의 품을 떠나 사회운동에 나선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함께 부르는 '민중가요'(Protest Song)로 자리 잡았다. 시대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변화를 외침으로써 부르다 잊히는 노래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자연 발생적으로 퍼져 영원불멸의 노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대중가요였다가 시위 현장에서 자주 불렸던 '아침 이슬',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불렀던 '철의 노동자' '그날이 오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가장 많이 알려진 민중가요라 할 수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 시기에 노동'빈민운동,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통일운동, 반미운동 등 계열별로 많은 민중가요가 탄생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모든 민중가요들을 뛰어넘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2년 후 만들어져 시위 성격에 관계없이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됐다. 과거의 민중가요 상당수가 거칠고 생경한 가사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을 줘 운동권만의 노래에 그쳤던 데 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좀 더 보편적인 생명력을 얻었던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정신을 오롯이 담아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불리게 됐다. 그러나 올해 기념식을 앞두고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새 기념곡을 따로 만들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5'18 기념식이 정부 행사이니만큼 기념 노래가 따로 있어야 하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은 많은 이견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적절치 않은 논리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 폭력에 맞서 시민이 저항한 운동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정부가 주도한다지만 시민이 중심이 되는 행사여야 하며 정부는 기념식에서 과거의 군사정부와 군이 저지른 범죄를 되돌아보고 참회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하려는 시도는 5'18 기념식을 박제화하고 그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졸렬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보훈처의 방침에 대해 비판이 잇따르고 여당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심재철, 하태경 의원 등이 비판에 가세하자 보훈처는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올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내년 이후에는 새 기념곡으로 대체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해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군 출신인 박승춘 보훈처장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유독 불편해하는 점이 1980년대 신군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오늘날 과거에 맞섰던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국가 통합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간극을 메우기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첫해만 빼고는 5'18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참가자 전원의 제창이 아니라 합창단만의 합창으로 부르게 했던 것이 단적인 예이다.

박근혜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주 4'3 항쟁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나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새마을운동을 기업의 생산성 독려와 연계시키려는 방식은 과거의 경직되고 획일적인 사고와 문화를 연상시킨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주도적으로 만든 보수 세력이 좀 더 열린 사고로 바꿔나가야 한다. 국가를 통합하려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과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불편한 노래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수 세력의 인식 전환을 통해 국가와 사회 통합을 위한 역할에도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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