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자체 '행정박물' 보면 외교의 폭이 한눈에

선물로 본 지자체 외교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방미 기간 중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에게 작지만 특별한 선물을 했다. 전통 나전칠기로 만든 반상기 세트와 한국요리 책자였다. 미셸 여사가 김치를 만든다고 해서 선물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보내는 이의 정(情)과 함께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잘 드러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6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딸들에게 자개보석함, 한복 입은 테디베어 인형을 선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원수만 이런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자치단체 간 교류도 활발한 만큼 지자체장들도 해당된다. 하지만 대구시와 경북도의 경우 전시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아직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지역 광역자치단체장들의 '외교 선물 바구니'를 살짝 열어봤다.

◆대구시

대구시의 '행정박물 관리대장'에는 단체장들이 받은 선물 98건이 기록돼 있다. 이 가운데에는 국내 지자체'기관들로부터 받은 것도 다수 있다. 선물을 받은 외국 국가는 일본'중국'대만'태국'카자흐스탄 등 아시아지역이 대부분이다. 대구시의 국제교류 범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 'VENT'사가 2010년 3월 대구시와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김범일 시장에게 전달한 시가 상자는 이색적이다. 뚜껑에 앉아있는 인물을 조각, 손잡이로 쓸 수 있게 디자인돼 있다. 대구시는 1990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와 자매결연을 체결한 뒤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외국에서 받은 선물 가운데에는 접시'액자류가 많다. 부피가 크지 않아 수송이 편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오 롱 빈 타이베이 시장이 2010년 11월 자매결연 체결을 위해 방문한 김 시장에게 전달한 선물도 도자기 접시다. 타이베이의 시조(市鳥)인 파란 까치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똑같은 선물이라도 경우에 따라선 화를 부를 때도 있다. 대만 당국은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선물로 까치 모양이 새겨진 도자기 화병을 준비했다가 국회의 질타를 받는 등 진땀을 흘렸다. 아시아권 국가에선 까치가 좋은 조짐을 상징하는 길조(吉鳥)로 인식되지만 유럽에서는 나라에 따라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김 시장은 2008년 태국 파타야에서 개최된 제2회 세계지방자치단체연합 아태지부(UCLG ASPAC) 총회에서 2년 임기의 회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인도네시아 자치단체연합은 김 시장에게 은색 접시형 액자를, 대만 타이충 시는 꽃이 그려진 액자를 각각 선물했다.

캄보디아 바탐방주는 2007년 대구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은제 그릇세트와 촛대를 선물했다. 은 공예품은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관광기념품으로 수도인 프놈펜 주변에는 금속공예의 명인들이 몇 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마을이 많이 있다. 바탐방은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프놈펜에서 북서쪽으로 290㎞ 정도 떨어져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대구시와 가장 교류가 활발한 국가다. 대구시 시민봉사과 권명숙 연구사는 "대구시가 받은 선물 목록에서 25% 정도를 차지한다"고 했다. 김 시장이 최근 다녀온 히로시마 역시 대구시의 자매결연 도시다. 2007년 당시 아카바 다다도시 시장은 대구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은 데 대한 답례로 미야지마 5층탑 모형을 선물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탑(높이 27.6m)은 일본풍과 중국풍이 조화를 이룬 모양으로 1407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시장은 일본 순방을 마친 뒤 이달 6일 기자회견을 열고 "히로시마시와 경제산업'문화관광 분야에 대한 협력을 확대키로 했다"며 "내년부터 예술단 교류 행사를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대구시 방문단은 이번 순방 기간 중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퍼레이드에도 참가, 김 시장이 정사(正使), 이재술 시의회 의장이 부사(副使)의 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경상북도

경상북도가 2006년 10월 이후 기록하고 있는 '내외빈 방문 및 각종 MOU 체결 관련 기념품 관리대장'에는 34개 품목이 선물로 올라 있다. 물론 값어치를 매기기는 힘들다.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 전통 인형이 우선 눈에 띈다. 약 30㎝ 크기로, 현지에 전해져 내려오는 '라마야나' 이야기에 등장하는 '스리라마'와 '신타'의 모습이다. 각각 사랑과 정절'명예를 상징한다고 한다. 체육 교류 활성화를 위해 2009년 11월 경북도를 방문한 인도네시아 자바주 체육회장단이 선물했다.

흑단나무로 아프리카 원주민 여성을 조각한 앙골라의 민속공예품도 눈길을 끈다. 2010년 알레르도 돔베 주한 앙골라대사가 경북도 방문 기념으로 전달했다. 앙골라 측은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한국 새마을운동의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경북이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목각 인형은 앙골라를 찾는 외국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상품이라고 한다.

중국 닝샤후이족 자치구 왕정웨이 주석이 지난해 7월 제9차 동북아자치단체연합(NEAR) 총회 참석차 현지를 찾은 김관용 경북도지사에게 선물한 종이 공예 족자는 화려하다. 가로 40㎝, 세로 1m 정도의 크기로 공작새를 표현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재 작품이라는 게 경북도의 설명. 한국'북한'중국'일본'몽골'러시아 등 6개국 71개 자치단체의 연합인 'NEAR' 사무국을 영구 유치한 경북도가 동북아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번영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외국 정상으로부터 직접 받은 선물도 있다. 2009년 11월 한국을 국빈 방문했던 쇼옴 라슬로 헝가리 대통령은 국립 경주박물관을 둘러본 뒤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부다 왕궁 등 문화유산이 새겨진 기념주화 세트를 선물했다. 라슬로 대통령과 김 지사는 문화경제 분야 교류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대통령이었던 2010년 11월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아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당시 양국은 상호 우호협력 증진을 위해 지자체 간 자매결연식(경북도'이르쿠츠크주, 제주도'사할린주)을 청와대에서 가졌다. 메젠체프 이르쿠츠크 주지사는 이 자리에서 바이칼 호수 풍경을 그린 유화(가로 80㎝, 세로 50㎝)를 전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이칼 호수만큼 경북도와의 관계가 돈독해지길 바란다는 뜻을 담았다. 김 지사는 젊은 시절 탐독했던 이광수의 소설 '무정'의 배경이 바이칼호수였다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경북도 자치행정과 홍규찬 주무관은 "외국 지자체와 교류에서는 서로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선물을 주고받는다"며 "역사와 지역 특색이 살아 있는 신라금관 모형, 토기, 찻잔, 하회탈 등을 주로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대통령이 받은 선물은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보관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 기간 100여 개국에서 1천158점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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